묵직한 가벼움에서 배우다-미스터 두들
끄적거림은 우리 안에 내재된 행위이다. 처음 세상에 태어나 우리는 끄적임을 시작했고, 끄적일 기회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끄적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그렇게 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 안의 능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불과 30년 전의 사람들은 뭔가를 끄적였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체로 그것을 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펜을 들어 무엇인가를 끄적인 기억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업무를 위해 무언가를 적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기계가 다 해준다. 종국에는 그림도, 글도 모두 다 그려주고 써주는 세상이 되었다.
던지기만 하면 완벽한 결과물이 나와주니 우리 인간은 발맞춰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벽함이라는 이름의 상자 속에 가두기 시작했다. 창작물이 한 번에 나오는 세상에서 시행착오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강박이 모든 창조성을 가로막고 만다. 어차피 이런 세상, '트렌드'에 따라가야 하니까 함께 떠밀려 열차에 올라탄다.
요즘세상에서 흐름을 탄다는 것은 애석하게도 자신의 의견, 개성, 창조성, 자발성 등을 한 발자국 뒤에 둔다는 의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의든 타의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때부터 해오던 그것 즉, '끄적임'을 포기했다. 무엇인가를 그리고, 쓰고, 만들고, 오리고, 붙이던 그 작은 몸짓의 힘을 우리로부터 소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끄적임의 힘은 유효하다. 일견 왜소해 보이고 멀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미스터 두들이자 샘 콕스는 이제 모두가 알만큼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네 살 때부터 낙서를 했고, 그 낙서는 작품의 경지에 이른다. '두들'은 우리말로 '낙서'라는 뜻이며 '두들링'이라는 표현도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는 어쩌면 생각이 너무 많은지도 모른다. 세상에 자신을 내놓으려면 거창하며 그럴듯해야 하고, 무게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없는 가벼움은 존재와 작품에 날개를 달아준다.
그의 작품과 창작과정을 보며 깨닫는다. 창조성 안에서는 사회가 기대하는 누군가일 필요가 없다.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심지어 사람인지 아닌지까지. 창조과정 안에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알 바가 아니다. 그저 창조성이 통로로 정한 '나'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면 된다. 그것은 태초의 끄적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며 실은, 우리에게 이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우리는 너무 무겁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훈련'받았고, 또다시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그러니 가벼움도 연습하면 된다. 가볍게 우리 마음속 창조성의 길을 열어두면 되는 일이다. 어릴 적 우리가 그랬듯 작은 끄적임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