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나눈 창조성의 비밀 7단계
'창조적 행위는 분노에서 나온다'는 것은 누군가가 진정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말과 같다. 어느 날 오랫동안 억눌렀던 어떤 것이 눈을 뜨게 된다. 외부의 자극이 되었든, 내면에 있던 것이든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자아를 삼킨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눈을 감은 채 살아간다. 말하자면 오늘 해야 할 일 혹은 내일 해야 할 일, 그리고 먼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넋을 놓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진짜 자신에는 닿지 못한 채로. 그런데 언제든 억눌러 놓았던 어떤 것이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마음속의 '그것'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을 마주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황한다. 자신 안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놀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회피하거나 거부한다. 사실 분노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자신이 눈을 떴는데도 알아봐 주지 않는 자아에게 화를 낸다. 심지어는 남에게 그 분노를 투사한다.
줄리아카메론은 말했다. '분노는 우리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알려주는 지도'라고. 이 감정은 매우 불쾌하며 들여다보기 싫은 감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분노는 정말 자신이 무엇을 원해왔는지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분노는 행위를 초대한다. 회피하는 단계를 무사히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분노가 가리키는 곳이 어디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한다. 또 이 분노를 한번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눈을 감고 살던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의 욕망과 삶의 변화를 맞닥뜨리며 그렇게 과거의 삶은 죽게 된다.
나비가 번데기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상이 좁은 번데기 속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도 고통은 따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겪은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자유가 있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우리는 분노를 통해서 우리 안의 진짜 욕구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자신을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카우프만이 말한 '강박적인 열정'이 아니라 '조화로운 열정'이 시작된다. 외적인 자극과 욕구에서 오는 삶이 아니라 내적인 속삭임의 길이 가리키는 열정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칼융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시야가 밝아진다고 했다. 밖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안을 보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난다고 말이다. 분노, 그리고 이후에 오는 조화로운 열정은 긴 잠을 깨운다. 그것은 잠든 상태에서 온전히 받아들이는 상태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