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순간

그들과 나눈 창조성의 비밀 8단계

by 바다별다락방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어린 시절에는 혼자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때의 나에게 혼자라는 말은 매우 무서운 말이었다. 그때는 혼자가 된다는 것이 마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리는 것처럼 와닿았다. 어린 시절 그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생존의 욕구라던가 어딘가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점차 나이를 먹게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이 곧 존재와 함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인간은 각자 자기가 그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인생은 그렇게 자기만의 생각을 살고 있었고, 그들은 각자의 우주 속에 있었다. 망상과도 같은 자신만의 우주는 그렇게 자아라는 것을 형성한다.


어차피 자기가 만든 생각 속에서 자신만의 생을 살아가는 거라면 좀 더 창조적인 우주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카우프만과 그레고어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오롯이 혼자 독차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삶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고독이 외로움과 다른 점은 자기 스스로 혼자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그것을 능동적 외로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시간을 따로 내어 자기 자신과 데이트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를 권한다. 스스로와 친해지는 시간은 직관을 따르는 시간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가 성숙해짐을 느낄수록 고독의 시간(모든 미디어를 제외한 그저 존재함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참 자기와의 조우를 반가워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홀로 앉아 공상에 빠지거나 바깥의 소음에 관심을 끊을 때, 좀 더 창의적이게 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독한 상태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소리를 듣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경험은 비로소 외부의 고요함과 내면의 고요함이 합일되고, 그 방향이 내부로 향할 때 생성된다.


때로는 누구에게나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타인과의 관계가 귀찮은 순간이 있다. 꼭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면 거절하게 되는 마음의 경향을 따르기도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그 욕구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지만, 어쩌면 그 순간이 자신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지나온 몇 년 동안 외부와의 소통에 귀를 기울였다면, 또 몇 년은 고독과 함께하며 삶의 자연스러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자연스러운 인정은 외면과 내면을 다시금 모양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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