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수집가

찰나의 아름다움에서 배우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by 바다별다락방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찰나'를 망각하는 경험 속에 놓인다. 매 순간은 마치 사진처럼 그저 찰나이며 삶을 규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감각이 어떤 것을 인식하는 데는 고작 0.01~0.05초 정도의 찰나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세포들은 전기신호를 통해 우리에게 순간을 전달한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정보를 모아 그 순간을 인식하여 세상을 만든다.


몸속 감각이 가져다주는 정보를 연속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학적 정보가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을 설명해 줌과 동시에 우리의 무지를 반증한다.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이며, 또 비논리적인 것인지를 안다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기원전 약 400년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통해 우리의 인지와 인식이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이 못 되는 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신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는데에 감각과 생각을 사용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고무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소크라테스의 자신을 알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자신의 무한한 생각을 통해 자기를 성장시키되, 그것이 맞을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심하라.'


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생각과 감정, 감각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찰나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술가 중에도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담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본인의 사진집 제목과도 같이, 삶의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고자했다.



지금 보면 합성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의 비밀은 찰나를 잡아내기 위해 소형카메라로 연습을 거듭한 브레송의 기술과 세상을 보는 눈에 있었다. 그는 삶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으며 매 순간을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작업에 임했다.


내가 어릴 때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극적인 영상과 사진들을 수시로 접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의 작품 자체에서 특별함을 느끼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찰나를 담으려는 그의 노력과 철학이 드러난다. 작품에는 삶의 순간뿐만이 아니라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작가의 두 눈으로 바라보는 살아있는 순간이 빛난다.




무프타르거리-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과거에 나는 괴로운 사람은 괴롭게 태어나서 괴롭게 사는 줄만 알았다. 또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게 태어났기에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자신만의 꽃을 찾아낸 사람이 있는 반면에,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귀신같이 부족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것을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송의 작품에는 그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자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아마도 그것이 사진의 매력일지 모른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가고, 끊임없이 찰나를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게 될까. 취할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브레송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질문들은 짧은 인생 여정에서 무엇을 경험할 것인지, 그리고 과연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 것인지를 던져준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브레송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인생의 매 순간을 축복으로 여길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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