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에서 배우다-프리다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인간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온전히 살아야 할 '생'을 잃어버린다. 각 개인은 삶을 살아갈 때,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 안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오류는 끊임없는 '자기의 타인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알아차림'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거나 자신이 특별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그만두게 된다. 보통 자신에 대한 인식은 청소년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다루지 못하면 성인기에도 자신만의 공고한 틀 속에서 진정한 생을 맛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자기 객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나를 타인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의 특질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다. 마치 다양한 심리 검사 결과지처럼 자기 자신의 신체, 성격, 특이사항 등을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라고 상상한다.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는 강점이 따로 있고, 약점이 따로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표를 통해 자신이라는 캐릭터를 그려나간다. 나라는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해지며 그 강도는 어떠한가. 또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는 데에 얼마나 걸리는가. 나의 몸은 어떤 상황에서 행복해하며,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하는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는 것이다.
화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는 이유 또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보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외형을 캔버스로 옮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타인화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에 있어 자화상을 가장 잘 활용한 작가를 꼽자면 프리다 칼로를 꼽겠다.
<두 명의 프리다>를 살펴보면 화가의 상황과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복된 사고와 유산으로 인해 많은 수술을 해야 했던 그는 의료용 집게와 피로 그 고통을 표현했다. 또 초연한 표정의 얼굴은 쓸쓸하고 외로웠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더불어 손에 쥔 디에고의 작은 사진은 디에고를 향한 애정과 회복하고 싶은 사랑을 대변하기도 한다.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가장 인상 깊게 보이는 부분은 서로 손을 마주 잡은 프리다칼로가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과의 깊은 조우는 삶을 스스로 위로하고 껴안는 듯 느껴지며 자신을 타인처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자신을 두 명으로 표현한 후, 겪은 경험을 캔버스에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자아에 매몰된 그것이 아니라 작가가 경험한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아프게 느껴지는 그의 자화상들은 작은 자기를 넘어 그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시도와도 같다. 예상컨대 그는 그러한 시도들에서 자신을 무수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삶과 생각, 그 수많은 경험 속에서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을 초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를 넘어선 '생'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의 삶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이해하고, 타인화를 습관처럼 하게 되면 보이는 것이 있다. 나는 나 이상이며 존재 이상이라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생각이 만든 세상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있는 그대로의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적인 시도들에 우리를 더 가까이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