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과 만나는 순간

존재에서 배우다. - 아그네스 마틴

by 바다별다락방


직감이란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통형 시공간 위에 펼쳐진 하나의 연속체이다. 특정 시점의 사건이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될 뿐 실제로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작가 안도 미후유는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성공할 거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거라고 말하며 다양한 일화를 예시로 든다.


성공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또는 예술가가 작품의 완성본을 알고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에서 그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미래에 존재하는 하나의 점이 현재에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자신을 믿게 되는 순간, 어쩐지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앎이 아니라 이미 몸과 마음이 알고 있다는 감각적 앎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촉'과는 그 성질이 다른 것 같다. 촉은 순간적인 감지 정도로 쓰이지만 직감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반응을 신뢰하고 망설임도, 조급함도 없는 상태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앎은 대체로 편안한 가운데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도 내 몸에 쌓여있던 감정들을 정화하고 감정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치유했을 때,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이 말하는 바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살아온 세월이 빚어낸 감정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을 바로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스스로도 꽤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살았으리라고 짐작한다. 어쩌면 에고의 작용이 너무나 비대해져서 영혼이 말하는 직감의 순간을 놓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직감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대표적인 인물 중에 아그네스 마틴이 있다. 미니멀리즘 화가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고요와 직관을 나타냈다. 작가는 겉으로 보면 연한 색연필로 그려낸 듯한 표현과 반복으로 선과 면을 평면에 그려냈지만, 실은 형태가 아닌 상태를 표현했다.


작가는 자신의 평온함, 무아, 기쁨, 침묵 등을 나타내며 작품을 감정표현의 수단이라기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고요함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불안하거나 생각이 많고 감정이 요동칠 때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그림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보기보다 그림을 받아 적는 사람에 가깝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맑아진 상태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신뢰했으며 같은 격자나 같은 선을 계속 그리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기도 했다.


선은 완벽하지 않고, 흔들리고, 미세하게 어긋나 있는데 이 지점까지도 작가 본연의 인간적인 부분을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더불어 현대의 끊임없는 자기 설명과 인정,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구지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고 그림은 말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마치 방향을 정하고 걸어간다기보다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니 그 형태가 비로소 나온 경험과 유사하다. 아그네스 마틴은 자신에게 무엇을 그릴까를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상태인가를 물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모르긴해도 작가는 자신의 몸에 정직하면 할수록 몸이 느끼는 직감에 더 다가갔을 것이다.


고요함, 명료함, 평온함은 우리를 영혼의 본래적 상태와 가까워지게 한다. 그 순간을 끊임없이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때의 직감은 대체로 미래에 드러나려는 것을 예고한다. 아그네스 마틴은 수행과도 같은 작업을 통해 자신의 본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꼈다.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시제를 뛰어넘은 '순간'에 존재하며 적극적으로 자신과 소통할 때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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