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작가노트-신구
그 사람은 컵을 놓은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제 조금 덜 조심해도 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허브가 심겨 있는 화분 근처로 걸어갔다.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들은 아침빛을 엷게 받고 있었다. 손을 뻗어 잎 몇 개를 조심스럽게 따냈다. 손끝에 남은 향이 공기 속으로 퍼졌다. 그는 그 향을 여러 번 맡아본 적이 있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물컵에 잎을 띄우는 순간, 아주 오래 전의 부엌이 겹쳐졌다. 같은 향이었는지 아니면 비슷한 빛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의 아침과 그때의 한 장면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잎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별것 아닌 동작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느껴졌다.
지금의 자신에게 이러한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어딘가에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들에서 그는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을 두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웅크려야 안전했던 시간들. 그는 그 기억을 붙잡지 않았다. 지워내지도 않았다. 눈을 돌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그 시간을 괜히 오래 들여다보게 되던 날도 있었다.
싫다는 감정과 그래도 놓지 못했던 온기가 한 번에 떠올랐다. '신구'는 그 겹쳐진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낡지도, 완전히 새롭지도 않은 얼굴로. 그는 지금의 물컵을 바라보며 그때의 장면을 현재 위에 그대로 두었다. 덮지도 밀어내지도 않은 채. 허브 향은 천천히 퍼졌고, 기억은 그 향만큼의 크기로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와 과거의 중간 어디쯤에서 일정한 속도로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브런치북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마음의 창에서 꺼내온 감각을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을 천천히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신구-한국 상상동물 중 하나로 신령한 거북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