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남겨둔 시간

1장. 작가노트- 경어

by 바다별다락방



허브 향은 아직 창가에 남아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잎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고, 그는 그 움직임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그의 과거 속 꽤나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몸이 먼저 아주 미세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그는 설명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자신의 선택을, 자신의 침묵을, 자신의 변화를. 누군가 묻지 않아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았고, 오해를 남겨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말하지 않으면 관계에 금이 갈 것 같았고, 설명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지금도 답장은 준비되어 있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지나갔다. 물컵 속 잎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그 흔들림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정리된 문장, 부드러운 표현, 불필요한 오해를 지워낼 단어들. 그는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읽었다. 설명할 수 있었다. 정리할 수 있었다. 오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는 그 문장을 끝까지 써보았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가 또 지웠다. 문장 사이에 조용한 여백이 생겼다. 불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면을 끄는 순간 관계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얇게 스쳤다. 대답하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 길이만큼 그의 안쪽도 조금씩 고요해졌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전처럼 그를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모든 감정을 타인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도망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말 대신 남겨둔 침묵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경어는 그의 물컵 속에서 조용히 헤엄치고 있었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 불안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선택이 자신을 더 또렷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 브런치북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마음의 창에서 꺼내온 감각을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을 천천히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경어-전통 동물 중 하나로 거대한 몸집을 가진 바다 동물, 고래(鯨魚).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겹쳐진 시간의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