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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Feb 09. 2016

한국 가는 비행기가 연착됐다

탑승 시각도 아닌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였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나는 탑승해야 할 게이트와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탑승게이트가 69에서 66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누군가로부터 흘러나왔다. 나는 보통 비행기를 마지막쯤에 탑승하기에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그 많던 사람들이 다시 69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이제 그들은 66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왔다 갔다 하느라 짜증이 난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항공사 메일이 도착해 있었는데 비행기가 3시간 정도 연착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급하게 한국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저녁을 비행기에서 때우려던 나의 끼니 전략이 차질을 빚었다는 게 조금 신경이 쓰였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내 가방에 동전이 정확히 5.2유로가 있었는데,  가만 보니 메뉴판에 쓰여있는 햄버거 가격은 5유로가 넘었다. 5유로 미만으로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있냐고 묻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응? 그렇다면 5유로 미만의 햄버거가 여러 개가 있었다는 얘기인가. 메뉴판을 다시 보니, 일부 햄버거에는 가격이 쓰여있지가 않았다. 환상의 판매 전략이라 생각하며, 아무 햄버거나 하나 사들고 자리에 앉았다. 콜라까지는 살 수 없어 햄버거만 목이 메도록 먹었다.


나는 컴퓨터로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3시간은 만만치가 않은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건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온통 한국 사람들이 있던 탓에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종류의 말이 그들에게서 나왔다.


대기업 취직은 말이야...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직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유럽 여행을 뒤로 하고 지친 모습의 그들은, 모두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제는 여행 후의 허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묵직한 경제 불황의 그늘이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크게 보면 경제 위기 속에 있다는 점에서 크게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나, 적어도 나는 내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최근에 일거리를 하나 딴 것으로 인해 자신감이 좀 상승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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