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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Dec 02. 2020

스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윤두서_노승도_국립중앙박물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농부작가이자 재야사상가인 전우익 선생이 1993년에 쓴 책 제목이다.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정성을 쏟는 일”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전우익 선생의 말씀처럼 살고 싶었고, 그 누구 불러주는 이 없지만, 호(號)도 우보(雨步:친구와 비를 함께 맞으며 걷는 이)라 지었다. 그런데 내 삶을 조금 곱씹어보니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만 있었다. 부자가 되어 혼자만 잘살아보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내 삶을 이웃과 나누어 함께 잘살아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행동은 없는 헐렁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거다. 

맨발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오른손에는 긴 지팡이를 들고, 가느다란 왼손엔 염주를 쥐고 있다. 얼굴도 홀쭉하고 몸도 삐쩍 마른 것을 보니 먹는 것이 영 시원찮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가느다란 눈에는 연민과 사랑이 가득해 보인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3원 3재 중 1인으로 비록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그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의 ‘노승도’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지만, 옛 그림을 읽고 배우는 이들에겐 윤두서 최고의 그림으로 손꼽는다. 왜 이 그림이 최고의 그림이냐면, 노승의 멋진(?) 삶을 그림 한 장으로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옷을 보자. 너무나도 대충 쓱쓱, 붓질 몇 번 하지 않고 대충 그렸다. 그런데 그 대충 그린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옷의 형태만 조금 굵은 붓으로 쓱쓱 긋고 연한 먹으로 채색을 했다. 노승에게 옷은 그냥 걸친 것뿐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옷에 반해 노인의 얼굴 부분을 보자. 윤두서의 자화상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머리와 처진 눈썹과 움푹 들어간 눈, 삐쩍 말라 보이는 목과 굳게 다문 입술 위의 콧수염. 이 노승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노승은 인생의 긴 시간을 호의호식하며 살지 않았다. 인생의 고해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며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 노승을 보았을 때 절로 고개가 숙어지고, 내 인생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공재 윤두서의 숨겨진 그림 실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은 노승이 들고 있는 기다린 지팡이다. 붓질의 시작은 지팡이의 윗부분에서 시작되었는데, 살짝 지그재그로 내려긋다가 노승의 어깨 부분 위에서 한 번 꺾고, 다시 밑으로 쭈욱 내려긋다 왼손의 소매 부분에서 또다시 살짝 비틀었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힘차게 내려그었다. 그런데 지팡이의 끝에 가서는 먹물이 다 되었나 보다. 종이에 먹이 덜 묻었다. 지팡이를 쉬지 않고 한 번에 쭉 내려그은 윤두서의 필력을 엿볼 수 있다. 

  노승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떼를 부려보고도 싶다. 

  ‘세상 속 중생들은 고해(苦海)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몰라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혼자만 이렇게 멋진 삶을 살면 어쩌자는 거요? 거 있잖소, 혼자만 맨발로 다니실 게 아니라 못 난 우리 좀 그 길에 데리고 가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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