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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Dec 05. 2020

하루의 고단함이 끝나는 그 시간

Jan Steen_몸단장하는 여인

Jan Steen_몸단장하는 여인_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37.5×27.5㎝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퉁퉁 부은 다리를 보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어느 정도 계급이 되면 밤을 꼴딱 세는 ‘일직’이란 걸 한다. 일직하사는 1시간씩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하고 밤새 중대의 안전을 책임진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중대장에게 밤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편안한(?) 수면시간을 보장받는다. 아무래도 밤 시간을 오롯이 깨어있어야 해서 전투화를 벗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밤을 보낸다. 그래서 아침이 되어 전투화를 벗을 때쯤 되면 발에는 땀이 가득 차 있고 종아리에는 고무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게 된다. 그 선명한 고무링 자국은 짧은 오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조금 사라지고 일과를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누울 때 즈음에야 지워진다. 

여기 이 그림이 바로 이 고단함의 실제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인의 종아리에는 선명한 스타킹 자국이 있고 침대 아래로는 신발이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옆으로는 요강이 있다. 주인이 온 걸 모르는지 침대에는 개 한 마리가 눈을 감은 채 웅크려 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일상인 듯 여인은 얼굴을 조금도 찡그리지 않았다. 그림에선 하루의 고단함과 여인의 내공(?)이 오롯이 보인다. 이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장르화가 Jan Steen의 ‘ 몸단장하는 여인’이다. 스타킹을 벗고 있는데 몸단장이라니? 영문으론 ‘Woman at her Toilet’ 혹은 ‘The Morning Toilet’이라 한다. 번역이 조금 어색하다. 

그런데 옷을 벗고 있고, 종아리에도 저렇게 스타킹 자국이 깊게 베었는데 아침이라고? 아침이다. 이 여인은 밤새워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화류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우리나라의 풍속화와 같은 일상의 모습을 그리는 장르화가 유행했는데, 몇 가지 상징적 단서에서 이 여성의 직업을 알 수 있다. 여인의 빨간색 스타킹은 17세기 성매매 여성의 일반적인 타일이었고, 널브러진 구두는 성적인 방종, 방안의 요강은 성매매 여성을 뜻하며, 개는 충성이 아닌 정조 없음을 의미하며, 의자 위에 꺼진 초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말한다. 이 그림 속 모든 도상이 여인이 성매매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도상적 의미에 대해 무지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냥 애틋했다. 

가방끈도 짧고, 가진 것도 없는 도시의 젊은 노동자. 그들은 좋은 직업도 가질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다. 꽉 조이는 스타킹을 신고 온종일 서서 손님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그나마 내일이 보장된다. 대부분 노동자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부당한데도 꾹 참아야 오늘로 끝이 아닌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침묵 속에 인간다움을 저 멀리 밀어내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애틋하고 애잔하다. 그런데 그림에서 여인의 얼굴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가에 있는 흐릿한 미소가 보인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맺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큰 희망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의 불꽃을 전부 꺼트리진 않았다. 비록 여인의 더러운 침대에는 본체만체하는 작은 개 한 마리만 있지만, 아마도 여인이 잠에서 깨어날 때 즈음이면 개가 반갑게 다가와 그래도 얼굴을 핥으며 위로하고 있을 거다. 큰 위로는 아니지만, 개의 위로가  어제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또다시 오늘의 고단함 속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모던타임즈’ 마지막 장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생각난다. 그래도 내일의 해는 떠오른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게 뻗은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찰리 채플린과 여주인공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현대의 우리도 모두 고단하다. 비록 오늘의 고단함이 내일의 고단함을 끝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 안의 작은 미소는 잃지 않는 그런 세상살이기를 소망하며, 여인처럼 입가의 근육을 움직여 작은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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