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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Dec 10. 2020

나무꾼의 추위보다는 낭만

윤두서_설산부시도

윤두서_설산부시도_견본수묵_ 24.0×17.0_간송미술관

  윤두서의 ‘설산부시도’는 하얗게 눈이 내린 산 속에서 땔감을 짊어지고 내려오는 나무꾼을 그렸다. 그림의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니 대학시절 폭설이 내렸던 강촌이 기억난다. 

  (형편이 어려운 어린아이들에게 적은 시간이나마 공부를 가르치던)공부방 후배들과 강촌으로 MT를 갔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던지 깜깜해야 할 강촌의 밤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런 아름다운 밤, 나는 우중충한 민박집 방 안에 콕 처박혀 술만 진탕 마셨다. 혀가 고꾸라져 발음은 어딘가 새고 입에는 엷은 미소가 덧씌워질 정도였다. 낭만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눈 내리는 밤 후배 손이라도 붙잡고 그 밤길을 걸어보자 했을 텐데. 눈앞에 보이는 건 술이요 손에 붙잡히는 건 안주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음 날 아침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으며 40 여분 구곡폭포까지 걸어 올라갔다. 20대의 젊은 혈기들이 모였으니 발목까지 쌓인 그 눈을 그대로 둘 수 있나? 눈밭을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며 서로 눈 먹이고, 옷 속에 눈 집어넣고 고통스러워하는 선후배 보고 깔깔대며 한참을 걸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맥주 한 잔.

  이제 제대로 ‘설산부시도’를 보자. 

  근경의 인물과 나무는 자세하게 묘사한데 반해 원경의 나무와 근경의 눈 덮인 땅은 선 하나라로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원경의 설산을 선으로만 표현한 것은 김명국의 ‘설산귀로도’가 생각나게끔 한다. 

윤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풍속화를 그렸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아직 중국 화풍을 버리지는 못해서 운두서의 그림에는 간혹 중국풍의 옷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곤 한다. 

  ‘설산부시도’에 나오는 나무꾼도 중국풍의 옷과 두건을 하고 있다. 턱에는 수염이 가득하고 코는 오뚝하게 올라갔는데 마치 멧돼지의 코같이 보이는 것이 역시나 우리나라 사람 같진 않다. 또한 지게를 아닌 멜대를 메고 나무를 그 위에 걸어놓은 것 또한 중국풍인데 이건 아마도 윤두서의 중국의 화보를 그려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길에 늘어진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이지는 않고 멜대를 감싸고 있다. 옷의 주름선은 간략하게 표현하고는 있지만, 옷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발목엔 한겨울 눈밭을 걸어야 해서 신발을 칭칭 묶은 끈이 올라와 있다. 

이 그림이 설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나무꾼 뒤의 나무와 옆의 작은 가지들에서 볼 수 있다. 눈이 있는 곳은 채색하지 않고 나무의 형태만 진한 먹으로 간단하게 선으로 그리거나 점을 찍어 표현하고 그 주위를 담묵으로 채색하였다. A4 한 장 크기가 채 되지 않은 작은 그림이지만 나무꾼의 굳게 다문 입과 멜대를 옷소매로 둘둘 말아 잡아 한겨울의 추위가 제대로 느껴진다. 

  그림 속 나무꾼의 삶이 머리로는 분명 애달픈데, 내 마음은 딴 세상이다. 그림 속 나무꾼은 보이지 않고, 발목까지 쌓인 눈만 보인다. 겨울눈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눈 덮인 산을 걷고 있는 나무꾼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게 ‘설산부시도’는 낭만이다.

  젊었던 시절 낭만을 낭만인 줄 모르고 철없이 보낸 그 시간이 너무 안타깝다. 언제 다시 강촌의 눈밭을 걸으며 친구와 눈밭에 쓰러질 수 있을까? 늙어서라도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눈밭에 뒤로 쓰러지기도 하고, 친구에게 눈을 한 움큼 입에 넣기도 하며 아이같이 놀아보았으면 싶다. 그나저나 뼈 부러지려나?    

 

PS : 배움을 위한 여행이 끝나면 첫 낭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한겨울 훗카이도에서 시작해야겠다. 훗카이도라면 눈이 많이 오니 눈밭에 넘어져도 푹신푹신 한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다 추우면 따뜻한 정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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