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추장을 사러 갔다가, 나를 사 왔다.”
프랑스에 한 아시아 마트에서 고추장을 집어 들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지 장보기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왜 맵고, 진하고, 자극적인 걸 찾게 될까?
마트를 나와 스탈린그라드 거리를 걷는다.
까르보나라를 좋아하면서도, 왜 불닭볶음면을 손에 쥐고 있는 걸까?
그 부드럽고 고소한 맛도 분명 좋다. 프랑스라는 나라와 꽤 잘 어울리는 풍미다.
하지만 내 입맛은 자꾸만 그 강렬한 매운맛을 찾는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음식은 취향일까? 아니면 정체성일까?
사실, 까르보불닭은 ‘혼종’이다.
삼양에서 만든 불닭볶음면에 까르보나라 소스를 얹은 바로 그 라면.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혼합된 맛이 꽤 마음에 든다.
프랑스의 부드러움과 한국의 강렬함.
한 젓가락 안에 들어 있는 이질감과 조화.
어쩌면 나는 그걸 먹으며 내 안의 충돌과 화해를 동시에 삼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그 모순적인 조화가 내게 더 진짜 같았다.
불닭볶음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라며 늘 곁에 있었던 그 매운맛은, 내 삶의 맥박 같은 것이었다.
뜨겁고, 강하고, 때로는 눈물이 날 만큼 자극적인.
그런데도 하게, 안심이 되는 맛.
까르보나라를 먹을 땐 나도 모르게 프랑스어 억양처럼 말이 느려지고,
불닭볶음면을 먹을 땐 혀끝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뒤따라온다.
한쪽은 나를 안심시키고, 다른 한쪽은 나를 깨운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살고 있다.
예전에 프랑스 친구에게 불닭볶음면을 권한 적이 있다.
첫 입을 먹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선 이렇게 말했다.
C’est pas un plat, c’est un défi.
(이건 음식이 아니라 도전이야.)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그날 나는 생각했다.
맞다. 내 삶도 늘 그렇게 매웠다. 늘 도전이었다.
나는 언제나 두 개 이상의 문화에서 살았다.
프랑스에서 걷고, 한국을 그리워하며, 미국식 유머로 마음을 풀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는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모호한 감정이 내 안의 어떤 것을 지키려 애썼고, 그래서 나는 늘 강렬한 맛을 통해 나의 일부를 확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 음식들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그 속에 내 감정과 기억이, 내 문화와 정체성이 녹아 있다.
까르보나라의 꾸덕한 부드러움은 프랑스의 여유를,
불닭볶음면의 공격적인 매운맛은 한국의 속도와 감정을 닮았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건 맛의 중간값이 아니라,
감정의 균형, 혹은 문화 사이의 화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매운맛을 좋아하는 건, 단지 자극을 원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 안에서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어떤 나의 조각을 꺼내어 마주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매운 맛은 나를 눈물 짓게 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한다.
그건 나를 ‘한국인’으로, 동시에 ‘이방인’으로 자각하게 만드는 감각이다.
첫 독자이자 내 글과 함께 버무려질 분들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맛을 따라 살고 있나요?”
혹시,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매운맛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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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면 라면은 손도 대지 않고
까르보나라나 봉골레 파스타만 찾는 건 안비밀이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