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급상승했다.
기온이 오르면 말도 예민해진다.
그건 햇볕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름엔 말 한마디가 피부의 열보다 마음을 더 자주 데운다.
프랑스어가 익숙해졌을 때, 나는 언어의 미묘한 결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말은 대화가 이뤄지기도 전에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중국인이 프랑스어를 왜 그렇게 잘해?”
악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중국인이’라는 단어 속엔 이미 분리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설명 없는 예외가 되어야만 했다.
또 어떤 날엔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아시아인 같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 말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솔직했고, 그래서 더 뜨거웠다.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견뎌야 하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반대의 방식으로 마음이 데인 적이 있었다.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볍게 흘러가서.
어떤 성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냥 타이밍이 좋았던 거지.”
“운이었네.”
그 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마치 내가 투명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노력이라는 두 글자가 통째로 지워지는 기분.
그 무게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데인다.
물론, 말이 항상 상처만 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아주 짧은 한마디가, 의외로 나를 붙잡아줄 때도 있다.
어느 한 여름날, 파리에서 면접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한 친구가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넌 잘할 거야.”
아무런 미사여구도, 감정적 포장도 없었다.
그 말이 특별했던 건, 그 순간 내게 기대를 건 유일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말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말은 짧지만 감정은 오래 남는다.
뜨거운 말은 순간을 태우고, 따뜻한 말은 시간을 데운다.
우리는 말 때문에 상처받고, 또 말 때문에 견딘다.
어쩌면 이 여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햇볕이 아니라
내가 건네는 말의 온도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 여러분은 어떤 말에 데었고, 어떤 말이 마음을 지켜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