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어머니는 어스름한 부엌 한 켠 부뚜막에 앉아 골몰한 표정을 지었다. 길게 펼쳐진 신문지 위로 만 원짜리 지폐들이 한 장 한 장 살포시 포개졌다. 무심한 듯 초점 잃은 손동작은 겨울비 내리던 홍제동 뒷골목의 눅눅함을 닮아 있었다. 퀴퀴한 잉크 냄새가 어머니 손끝으로 배어들자 손등으로 불거진 핏줄들이 바스락 거리며 날카롭게 박혀 들었다. 그렇게 벽돌처럼 온장이 되어버린 돈뭉치들이 툭 털린 고무줄로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는 창문을 열어 습한 공기를 마시며 낮게 중얼거렸다. ’ 거기 가면 네 이름으로 살렴’ 어머니의 속 앓이 같은 소리는 진언이지 축복인지 빗물처럼 튕겨올라 가파른 산동네 계단을 타고 튕겨 내렸다. 청년은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을 코트 깊은 안주머니에 찔러 넣고 인왕산 새벽길을 내려 김포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던 버스의 창가 풍경이 시린 이마로 이슬을 뿌렸다.
기계음은 언제나 차갑고 무감각 했다. ‘ 학내 집회 해산… 불법 전시물 철거…’ 앙칼진 아나운서의 소리가 습한 공기를 뚫고 차창을 두드렸다. 어지럼증이 났다. 하지만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 아주 오랜 기억들이 주머니 속 움츠려든 손 바닥으로 식은땀을 토하고 있었다. 몸은 언제나 정직하다. 스스로가 알아버린 그 정의로운 생각들과 집요하게 몸뚱이를 속이던 망할 놈의 기망술이 서로 죽일듯이 전쟁을 하고 있었을 때도 몸은 언제나 정직하게 반응했다. 살고 싶다고...
대학 본관 천장은 이상하게 낮았다. 행정실 유리창 앞에 서면 사람의 키가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담당자는 웃지 않고 말했다. ‘규정이 그래서요.’ 규정이란 단어는 참 많은 돌아버리게 하는 묘한 녀석이었다. 그날 나의 작업은 ‘이적 표현물’이라는 빨간줄 하나로 벽에서 내려졌다. 사소하게 찢겨진 테이프 자국이 더 지랄 맞게 아팠다. 좀 좋은 천에라도 그려 넣을 걸...작품이 아니라 이름이 떼어지고 있었다. 목젖으로 튀어 오른 단어들이 아우성을 치며 피를 토하듯 하늘로 날아 올랐다.
지도교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의 문제는 재능이 아니라 언제나 태도야. 이젠 조용히 지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아.’ 교수가 내민 커피가 식어 있었다. 교수의 행동과 말은 늘 미지근 했다. 뜨겁지고 식지도 않은 그러나 적당한 온도로 몸을 씻기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뭐 그정도의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를 일관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한 손에 쥐고 있던 스케치북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름 석자가 선명히 박혀 있던 낡은 스케치북이었다. ' 내 이름으로 산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냥 그렇게 살아내면 그만 아닌가.' 비밀이 만든 말은 언제나 탈이 나는 법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할 수 도 있는 법이었다.
친구가 연행되던 날, 운동장 모래 바닥에 떨궈진 그의 연필을 주워주지 못했다. 주울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득한 메아리가 울렸다. ‘야!!, 괜찮아? 어서 피해~~’ 다급한 소리가 가슴을 치고 있었다.
아무도 괜찮지 않았다. 그날 밤, 도서관 3층 구석에 처박혀 낯선 불어책을 펼쳤다. 'Comment vous appelez-vous. Je m'appelle~~' 낯익은 이름이 혀 밑으로 흘러내렸다. 나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타협이란 걸 시도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렇게 어둠으로 사그란든 영혼들은 제 몸뚱이 무게 정도만 견디어도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란 사실을.... 네 걸개그림은 쓰레기야~~ 언제나 쓰레기였어~~ 친구가 외치고 있었다.
난생처음 김포라는 곳을 갔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은 머리에 털이 나고 처음 경험해 본 낯선 공간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비행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청년 홀로 출국장을 오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수속을 밟는 동안 출국장 안내원들과 승무원들은 매우 예의 바르고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콧대 높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있게 하얀 대리석을 때렸다. 바닥을 구르던 소리들이 진저리를 치며 카운터를 넘나 들때 마다 보딩패스를 준비하던 아가씨들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국가로부터 해외를 들락거릴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거칠것이 없었다.
공항을 출입한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정부에서 일하는 고위직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임원 혹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의미가 깔려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항은 과시의 무대이기도 했다. 화려한 의상과 값 비싼 여행 가방 그리고 선글라스는 공항의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었다. 비행기 내부는 더욱 가관이었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들은 늘 고정된 미소를 지으며 승객들을 맞았고 중앙 통로는 몰염치한 사내들의 점유지였다. 돼지 뒷다리 같은 허벅지를 담요에 깔아뭉갠 사내들이 화투장을 내리치며 낄낄거렸다. 담배를 꼬나물고 승무원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사내들도 있었다. '야 여기 술 더 가져와 '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비행기는 늘 넉넉하게 자리가 비워져 있었고 매끈한 비행기 천장을 타고 자유롭게 우랑하던 담배 연기들은 구석 구석을 헤집었다. 누구 하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팔걸이 재떨이가 박힌 비행기 좌석은 특권이었다. 아무나 앉을 수 없는 하늘의 자리였다.
공항의 창백한 불빛에 입술이 말랐다. 면세점 구경 재미도 잠시였다. 유령처럼 떠돌던 공항 승객들은 탑승을 알리는 방송에 이끌려 보딩 게이트로 합류했다. 좀비처럼 늘어선 다리엔 힘이 없었다. 화구를 쥔 손이 덩달아 땀을 뱉어 냈다. 급물살처럼 빨려 들어간 자리는 창가 쪽이었다. 무심한 활주로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고 날개 끝에 매달린 붉은 점멸등이 덧 없이 깜박였다. 등 뒤로 지구의 무게가 느껴지며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치고 올랐다. 눈물이 났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이슬이 동굴 같은 창에 매달려 흐느끼고 있었다.
비행기는 첫 경유지인 모스크바에 닿았다. 24시간을 날아야 하는 비행의 첫 목적지였다. 낮게 깔린 활주로의 유도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한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으로 기울던 모스크바의 하늘은 디젤 먼지가 뒤섞인 공항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두꺼운 유리로 경계 지어진 환승구역은 가늘게 이어지며 개미굴처럼 구불구불 이어졌다. 통로 끝으로 작은 벽시계들이 서로 다른 시간을 향해 달려갔다. 군청 코트를 입은 직원들도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턱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그렇게 곱창 같던 통로를 따라 이동한 대합실엔 어색한 부산함이 떠돌고 있었다. 제법 쌀쌀하고 찬 기운이 돌았다.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며 설탕 큐브를 찻잔에 떨구었다. 언제나 환승구역은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했다. 앞선 사람들의 뒤꽁무니만 좇아야 하는 강박 관념이 만들어 낸 공간인 까닭이었다. 나는 길을 묻지 않았다. 경유라는 단어는 또 다른 나를 살아내기 위한 방식아란 것을 알았던 까달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며 그만이었다. 이제 곧 내 것이 될 무언가에 대한 기대와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온 몸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또 다시 낯선 도시에 작은 날개를 접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무게가 느껴지던 샤를 드골 공항은 유리 통로로 이어진 수화물 집하장으로 승객들을 몰아갔다. 또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꼬박 하루가 걸린 여정이 이제 막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국 심사관의 도장이 '탁' 하고 여권 위에 선명한 잉크자국을 남겼다. 등허리 안쪽애 숨은 근육들이 아주 천천히 느슨하게 허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릿한 금속 맛이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코를 스쳤다. 이제 막 구워 놓은 바게트 냄새도 엷은 공기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낯선 표지판 위에 그려진 문장들 속으로 짧은 악성떼귀(Accent aigu)표시가 깃발처럼 나부끼며 이방인들을 비웃고 있었다.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택시 유리에 붙이자 아랍계 프랑스인 기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쿨하게 미터기를 꺾었다. 낯선 도시의 생소한 리듬이 이방인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들어선 Paris 시내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젖은 도로 위로 오렌지빛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며 야경을 밝히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내리던 부드러운 선율들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