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멘털.

불안, 자유, 우울의 교차점

by 이정훈

시간은 많은데 마음만 바쁘다.

아침엔 자유롭고

오후엔 불안하고

저녁엔 우울하다

그리고

새벽엔 또 희망을 품는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고문이다.


오전 6시

알람이 울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진다.

밤새도록 이상한 꿈을 헤맸다.

현실인지 뭔지도 모를 꿈이다.

자는 동안은 그래도 자유로운 착각으로 행복하다.

창밖이 아직 어둡다.

안도감이 돈다.

날이 밝으면 왠지 불안하다.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면

왠지 죄를 지은 것 같다.

나태함과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래서 백수들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난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출근할 곳도 없다.

그냥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된 것에 위안과 감사를 느끼며

다시 눈을 감는다.

시계를 본다.

10시다.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늦잠 자도 되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봐도 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어도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어떻게 보낼지 내가 정하면 그만이다.

무한한 가능성이다.

운동을 할까? 책을 읽을까? 카페에 갈까? 산책이라도 할까?

뭐든 할 수 있다.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자유의 유통기한 : 2시간

문제는 이 자유로운 기분이 오래 안 간다는 거다.

씻고, 밥 먹고, 폰 보다 보면 어느새 정오.

그리고 깨닫는다.

"오늘... 뭐 하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못 고른다. 자유는 순식간에 공허로 바뀐다.

일정이 없다는 건 자유로운 게 아니라, 목표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오전의 달콤함은 끝난다.


오후 2시 - 불안의 습격

핸드폰을 본다.

인스타그램을 연다. 친구 A는 해외 출장 중이다. 친구 B는 승진했다. 친구 C는 신혼여행 가는 중이다.

다들 바쁘다. 다들 뭔가를 이루고 있다.

"나만 이러고 있네."

가슴이 답답해진다.

카톡 단톡방도 조용하다. 낮 시간에는 다들 일하니까. 나만 한가하다.

그래서 폰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더 불안하다.


통장 잔고 확인의 공포

용기를 내서 통장을 확인한다.

잔액: 58만 원.

카드값 나가면? 23만 원.

월세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대로 가면 3개월? 아니, 2개월?

"일 해야 하는데..."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력서를 쓸까? 그런데 뭘 쓰지? 자소서는? 뭐라고 쓰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그래서 미룬다. 내일 하자. 내일.


부모님 전화의 무게

진동이 울린다.

'엄마'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받아야 하는데, 받기 싫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요즘 뭐 해? 밥은 먹고 다녀?"

"응... 잘 먹고 있어."

"일은 좀 구했어?"

침묵.

"아직... 알아보는 중이야."

거짓말이다. 오늘 하루 종일 누워서 유튜브만 봤다.

"그래, 알았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건강만 챙겨."

엄마는 다독이지만, 나는 더 죄책감이 든다.

전화를 끊고 나면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저녁 7시 - 우울의 정점

해가 진다.

하루가 끝나간다. 그런데 오늘 뭐 했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안 했다.

침대에 누워, 폰 보고, 유튜브 보고, 밥 먹고, 또 누워있고.

"오늘도 아무것도 안 했네."

자괴감이 밀려온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퇴근하는 시간. 나는? 하루 종일 퇴근 상태였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천장을 보는 시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이래도 되나?"

"이러다가 진짜 망하는 거 아냐?"

질문만 늘어난다. 답은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백수도 좋은 시간이야. 쉬는 거야."

쉬는 게 아니다. 그냥 멈춰있는 거다.

쉬는 건 다시 달릴 에너지를 모으는 건데, 나는 달릴 곳도 모르겠다.


내일은 다를까?

그래도 생각한다.

"내일은 달라야지."

"내일은 진짜 뭐라도 해야지."

"내일은 운동하고, 이력서 쓰고, 공부도 하고..."

다짐은 거창하다. 실천은? 내일 얘기하자.


심야 1시 - 희망 고문

새벽이 되면 이상하게 동기부여가 된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다.

"백수 탈출 성공 스토리"

"30대, 인생 역전 가능할까?"

"하루 1시간으로 바꾸는 인생"

다 본다. 진지하게 본다.

"나도 할 수 있어."

가슴이 뛴다. 희망이 보인다.

그래서 검색한다.

"30대 백수 자격증 추천"

"코딩 독학 가능한가요"

"마케터 되는 법"

강의도 담아놓는다. 책도 장바구니에 넣는다. 메모장에 계획도 적는다.


내일부터 시작이야

"내일부터 진짜 시작한다."

오전 7시 기상, 운동 30분, 공부 2시간, 이력서 작성...

완벽한 계획이다.

그리고 잠든다.

다음 날 일어나는 시간? 오전 11시.

계획? 휴지통에 버려진다.


백수의 멘털은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뀐다

오전엔 자유롭고,
오후엔 불안하고,
저녁엔 우울하고,
새벽엔 또 희망에 차 있다.

이 사이클이 매일 반복된다.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 지친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럼 그냥 일해."

쉽게 말한다.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백수는 안다.

일이 없어서 백수인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백수인 거라는 걸.

자신감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방향을 몰라서 백수인 거라는 걸.


버티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 버텼다.

무너질 것 같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포기할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백수의 멘털은 약하지 않다.

오히려 강하다.

매일 불안과 싸우고, 우울과 싸우고, 자괴감과 싸운다.

그래도 내일 또 눈을 뜬다.

그게 백수의 진짜 능력이다.


이것도 과정이다.

끝은 온다. 언젠가는.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오늘도 버텼으니까, 내일도 버틸 수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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