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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Dec 19. 2020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북해의 위도는 내가 새벽을 세던 나날들의 울음보다 높고 깊었다. 담처럼 쌓인 안개는 이곳이 바다라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물결 소리가 바람을 입 속에 넣고 왔다. 오로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북쪽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만들었다. 바람은 짰다. 머리칼은 곧 비릿해진다. 콧등에 맺힌 바다의 조각들을 모으며 물 위를 걸었다. 좁고 긴 방파제 위에 위태롭지 않은 듯 작은 벤치가 서 있다. 크고 작은 나무에 못질을 했다. 얇은 가지들을 손으로 엮어 만든 지붕이다. 옆으로 누이면 마치 요람같이 보인다. 해변에 놓인 바구니, 이런 이름을 가졌다. 어떤 아기가 이런 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을까. 등이 굽은 노부부가 어제부터 이곳에 앉아있다. 요람을 타고 왔을 그들의 까마득한 유년 이전의 기억으로부터, 오늘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앉아 있다. 뒤통수를 보고 싶었는데. 눈앞이 까마득하게 젖어 온다. 


 한 번의 파도는 내게 너를 데려 온다. 그다음 번의 파도는 내게서 너를 데려간다. 한 번의 파도는 네게서 나를 뺏고, 또 그 후에 칠 파도는 네게서 나를 어떻게든 주워 담는다. 그리하여 알게 될 불안과 의심을 늘 다음번의 무언가가 무섭게 와 덮고 달려간다. 상실을 경주하는 것이다. 물이 쓸어간 위에 남은 소라게를 어쩌다 발견이라도 한다. 그곳을 다시 본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누군가 나를 쓸고 간 자리, 내가 누군가를 치고 달아난 자리. 지나간 마음에 누군가가 손을 얹으면, 그것은 마치 썰물 후 남은 것에 대한 신기함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달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동안 바다 위로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내가 지나쳐간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그들과 겪던 실연과 놓쳤던 인연들이 서로 엉키고 묶여 여기서 부유하며 궤도를 만든다. 가끔 누군가가 와서 떠다니는 마음들을 붙잡기도 하고, 섬광 같은 충격을 주어 오래전 기억의 모양을 일그러뜨린다. 그 후 남은 것을 생각하는 일만 남아 있다. 


 지상과 경계를 짓는 기억의 층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을 보는 일이다. 그곳은 특별하게 더 두껍다. 요람 속의 노부부는 그것을 세고 있는 걸까. 여섯 시간 후 달이 다시 지구를 밀어내면 노부부는 잠깐 요람에서 일어나 튼 손으로 개펄을 쓸어내린다. 한참 동안 그곳을 걷다 다시 달이 여기로 바다를 내어주면 다시 바구니로 들어가 앉는다. 내가 북해에 머문 나날 동안 그들은 거기 언제나 앉아있었다. 그들의 생 위에 누군가의 생이 얼마큼 겹쳐 있었나, 그리고 완전히 가려지지도, 완전히 치워지지 않는 안개 같던 언젠가의 마음들은 거기에 또 얼마나 섧게 쌓여 있었을까. 


 가끔 그는 요람에서 걸어 나온다. 소라게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 위를 기어간다. 쪼그려 앉아 소라게를 두 손으로 쓰다듬는 마음 뒤로 저녁놀이 내려앉는다. 아무것도 아닌 손길처럼 보이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자리를 오래도록 쓰다듬는다. 또다시 그 자리로 파도가 밀려와 그를 덮는다. 그리고 그 위로 담처럼 쌓인 안개가 그들이 무겁지 않도록 내려앉는다. 비릿한 바람이 가끔 커튼을 열고 그 사이로 쓸려 오고 밀려가는 파도가 가끔 안개를 두드려준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도 언제나.  


 북해에서 기념품으로 산 컵 속에는 작은 안개가 매일 콧등으로 올라온다. 목을 축이는 작은 안갯속에 며칠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있고, 손바닥으로 기어오르던 소라게가 있다. 얕은 물가 위에 그득 담긴 나의 바다를 삼키는 오후. 




이번 여름, 북해에서 산 컵에는 Flut와 Ebbe 라고 적혀있다. Flut는 밀물, Ebbe는 썰물 매일 컵 속에 파도가 밀려 오고, 나를 쓸어간다. 달이 지구를 미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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