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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Dec 15. 2020

한참은 그렇게 둘 것이다




한참은 그렇게 둘 것이다 


서로에게 서로인 서로는 언제나 그렇듯 식사를 잘 끝냈다. 각자의 웃음을 뜨문뜨문 내보이다가, 오늘도 사랑을 했다.




식탁이 오늘따라 비좁다. 접시를 놓고, 숟가락을 옆에 둔다. 각각 네 벌씩이다. 가족이 넷이라 모든 것들이 네 개씩이다. 여기에는 같은 편이 많다. 여기 위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서로가 서로다. 시간의 중력은 나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으므로 나는 그간 많은 것들을 쉽게 잊었다. 그리하여 어떤 이름에 맺힌 절망들을 완전히 복기하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고요가 여기를 몇 차례 치고 가야 했다. 소란스럽기만 했던 하루가 겹겹이 쌓여 밥 위에 소복이 앉았다. 호호, 불린 작은 입김이 날아들더니 흰쌀밥 위에 포슬포슬 앉았다. 


쌀밥 몇 그릇을 세고 나르는 동안 식탁은 더 좁아져 갔다. 숟가락도 모양이 바뀌었다. 너는 커가고, 나도 커갈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하여 여기 그대로다. 몇 번의 고요가 더 찾아와야 섧게 물든 절망을 셀 수 있을까. 제습기를 틀어 놓았다. 벽돌도 썩을 수 있다. 그래서 멀쩡해 보이는 집 안에도 곰팡이가 생긴다. 식사를 끝내고, 환기를 하고 제습기를 틀었다. 머리에 기름 냄새가 배었고, 그것으로 하여금 오늘 식탁 위에는 마늘과 양파를 넣은 돼지고기 볶음이 올라왔었다고 새삼 생각했다. 습도를 서둘러 낮아지게 하려고 부엌문을 닫았다. 비로소 이제 여기로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 


 창문의 서리는 개었고, 습도계의 숫자도 낮아졌다. 식탁 위에서 부유하던 공기 알갱이들도 제습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냄새였다. 마늘과 양파를 잔뜩 넣은 돼지고기 볶음 냄새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정육점과 세탁소의 냄새, 카페와 미용실 냄새. 흰 서리 냄새와 여름 호수의 초록 냄새, 모국을 떠나온 날, 처음 발을 들이던 슈퍼마켓에서 맡았던 냄새가 부엌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서로에게 서로인 서로가 앉는 식탁 위로 아이들에게 주려고 손으로 찢어놓은 고기가 올라온다. 유명 살림 블로거를 따라 하며 뽀얗게 삶아지던 행주를 보니 뿌듯하다. 홀로 앉아 마시던 갓 내린 커피를, 음식이 타는지도 모르고 샤워를 하다 숨이 뒤로 넘어갈 뻔 한 날을, 흰 눈 사이로 맹세했던 우리들의 무언가를, 그리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나의 누군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식탁이 오늘따라 더 비좁다. 오늘은 감자를 볶고 소시지를 삶았다. 서로에게 서로인 서로는 언제나 그렇듯 식사를 잘 끝냈다. 각자의 웃음을 뜨문뜨문 내보이다가, 오늘도 사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와 제습기를 튼다. 한참은 틀어놓은 채로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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