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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l 08. 2021

꿈의 절기



발그레해지는 계절의 걸음을 따라 걸었다. 찬 이슬이 언제 이렇게 가득 내려앉았을까. 이슬이 내리는지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밤이 낮보다 길어지고, 새벽녘에 내리는 이슬이 차갑게 식어 가는 중에 태어났다. 풍경소리를 담고 부는 가을바람은 내 생의 배경음악 같았다. 삶을 꿈꾸기 적당한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절마다 사람들은 날마다 축제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다양한 색깔로 울고 웃는다. 누구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그의 또 다른 이를, 누구는 바짝 말라가는 낙엽을 보고 슬픔을 떠올린다. 또 누구는 낙엽 사이 구르는 상수리나무 열매를 보고 소중한 이의 얼굴을 가져온다. 가을에 태어난 나는 매년 가을을 기다리다가 너무 빠르게 겨울을 맞고, 봄과 여름에는 가을을 잊다가 다시 입추가 되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다시 세계 밖으로 나온다.  


내가 꾸는 꿈은 매년 다르고 비슷했다. 찬 서리가 빠르게 물들이는 나무의 잎처럼 번져갔다. 매번 다른 모양으로 물들고, 비슷한 방향으로 퍼져갔다. 그러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비가 내리면 싹이 텄다. 마음에 맺히는 꿈의 잎은 여름 내내 나의 나무가 다행스럽게 커졌다는 믿음의 회로였다. 그러면 이런 꿈 밭에 나는 무언가를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었고, 곧 다가올 또 다른 시절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청명이 시작되면 나의 꿈은 겨우내 품고 있던 소원의 장면을 퍼트리기 위한 준비를 했다.  


모든 삶의 순간은 계절 속에서 살아있듯 나도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는 편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 좋았다. 그래서 늘 꿈을 꿨다. 낮이 가장 긴 시절에 오랫동안 연인의 얼굴을 품고 미래를 꿈꾸었고, 해보려던 것이 잘 안 되어 좌절하고 절망했던 때에는 유난히 얼음이 꽝꽝 얼어붙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추위가 닥쳤을 때 나는 나의 꿈이 소용없는 쓸모라 여기기 시작했고, 가차 없이 버리는 편을 선택하기도 했다. 쓸모 있는 꿈을 꾼 적도, 쓸모없는 꿈을 쓸모 있다고 믿어 오기도 했고, 사치스럽고 소란한 꿈을 꾸기도, 행복한 꿈을 꾸기도, 말도 안 될 환상 같은 꿈의 장면을 마음에 두었다. 설사 그것이 지금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 비가 내려 촉촉해지면 작은 희망을 심었다.  


꿈의 순환은 계절의 그것과 같아서 비슷한 패턴을 그리며 나를 회전시켰다. 비가 내리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나무가 커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떨어진 낙엽이 구르는 길을 상상했다. 길 위에서 겨울잠을 자기도 했다. 꿈을 품고 꿈을 향해 마음을 다한 노력이었다. 그러다 잠시 접어 두고 버리고 포기했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봄의 경칩이 되자 나의 꿈은 다시 마음속에서 기지개를 피고 또 다른 꿈의 싹을 준비한다.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겨울을 견딘 꿈의 어깨에 작고 부드러운 날개가 돋아나 있다. 그리고 찬란한 마음이 가득 묻어 있다.   다시 따뜻한 봄을 맞은 꿈은 자신의 꿈결 위에 다시 꽃씨를 뿌린다. 곧 비를 맞고, 바람에 쓰러지고 완전히 뭉개지고, 꽁꽁 얼 것을 안다. 그런데도 또다시 꿈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내게 또다시 올 봄을 믿기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 줄 따뜻한 안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찬란할 수 있을 생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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