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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l 01. 2021

커피 위 얼음 동동



커피 위 얼음 동동



“그거 알아? 아이스커피는 여러 번 저어 줘야 한다니까!” 인스턴트 아이스커피를 먹을 때면 혀끝에 머물던 맛을 생각한다. 커피는 무조건 잘 저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아무래도 시리얼 볼이었을, 커다란 사발 컵 가득 엄마는 여름이면 자주 아이스커피를 타 주었고, 그때마다 나는 우유를 받아 마시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크고 깊은 컵 속에 커피와 우유, 물을 한데 넣은 후 길고 투명한 스푼으로 연신 저었다. 얼음끼리 부딪치면서 작은 종소리가 컵 속 가득 퍼져나갔다. “밖에서 사 먹는 커피는 이런 맛이 나지 않지, 그렇지 엄마?” 고작 이십 대의 입맛으로 커피를 논하다니. 하지만 그 시절 엄마의 아이스커피는 내게 단연 최고였다. 


6월, 여름의 초입, 부쩍 더워진 날씨 덕분에 얼음을 자주 얼려 둔다. 얼음을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 기분 좋은 힐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커피 맛을 따라 해 보려고 큰 시리얼 볼을 구해보기도 하고 또 엄마처럼 열심히 저어 본다. 누구든지 태어나자마자 익숙한 세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다정하게 새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며 자란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영원토록 맺힐 특별한 기억이 저장되어있는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장소이다. 과거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은 서로를 잇는 친밀한 끈을 갖는다. 내게는 여름에 마시는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처럼 엄마의 레시피는 우리 둘 사이를 잇는 기억의 소재이다. 가장 안락한 세계를 떠나온 지 벌써 십 년, 나는 스스로 쌓아 올린 나만의 작은 세계 속에서 자주 그 시절의 맛을 따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깨닫는다. 맛에 딸려 길어 올려진 오래되고 익숙하고 푸근한 마음은 시절에 대한 온전한 그리움이었다고. 장면 속에 함께 있던 이를 향하는 사랑이라고. 이것이 내가 자주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생각해내려는 이유다.


은근한 녹음이 비를 타고 꾸덕꾸덕지게 공기를 데우는 시간이다. 10년 전 6월의 어느 날, 나는 결혼을 했다. 가장 포근히 감싸던 온기를 떠나 오는 것을 택했다는 말이다. 며칠 전, 10주년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요즘에서야 알게 된 ‘결혼’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는 당시에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가장 포근했던 세계와의 이별이라는 일, 가끔 툭툭 튀어나오는 우울감과 행복이 공존하는 스펙트럼. 그런데도 지금을 행복하게 여겨야 하는 삶.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무거웠다. 이럴 때마다 나는 가장 따뜻했던 시절의 미각을 꺼낸다. 엄마의 음식에 관한 감각을 떠올린다. 얼음 동동 커피 한 잔과 따뜻한 밥상을 따라 한다. 김 한 장 얹은 계란말이, 내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맛을 가진 된장 시래깃국, 여전히 엄마 집 숟가락 보관함에 놓여있는 내 은수저 한 벌. 서로의 웃음이 건너오다 밥상 위 온기에 걸려 있던 그때의 풍경을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결혼이라는 선택 이후, 지금의 시절을 인정하는 위로이자 지난 기억의 그리움에 훨씬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포근한 시간 여행이다. 


이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찜을 해볼까? 엄마는 물을 많이 부었던 것 같은데.’

늘 먹기만 했던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음식 모양이 가물가물하다. 

“조선간장을 넣고 식초도 양껏 넣어 조물조물 무친 가지나물도 오늘 같은 날씨에 딱이지. 엄마는 손으로 북북 찢었던 것 같아. 그리고 바로 데쳐야 하나?” 

가장 안락했던 세계 속의 엄마의 음식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을 그리운 장면을 떠올리는 레시피가 되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을 따라 해 보는 일. 이것은 지난 시절 동안 나는 얼마나 사랑을 받았었을까, 를 짐작하는 일이고 또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사랑할 것인지를 다짐하는 일이다. 어느새 커피를 다 마셨다. 얼음도 그새 다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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