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
5살 아들이 주사위를 던지기 시작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카드를 샀더니 부록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그려진 부루마블과 비슷한 게임판을 주었다.(맞다. 우리 어릴 적에도 불렀던 그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처음으로 주사위를 던져보는 게임을 접한 아들은 주사위를 던진 후에 숫자를 계산해서 길만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했다. 4칸 가야 하는 것을 3칸만 가고 멈추었다. 가끔은 더 가기도 했다.
다음 날 아들은 게임의 룰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이순신 장군 칸에 가면 60계단을 한 번에 추월해서 올라갈 수 있는데, 이순신 장군을 만나면 얼마나 좋아했던지 모른다. 안중근 의사를 만나면 바로 100번으로 간다. 역시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는 훌륭한 분들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빨리 가는 것에 집중했다. 몇 칸을 뛰어넘어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 가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적응이 되자, 이제는 내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했다. 원효대사 해골물, 백제 의자왕을 만나면 한참 미끄러진다. 그럴 때면 “아빠 좀 주사위를 잘 던져봐.”라고 말하면서 위로해주는 여유도 보이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내 나이 스물, 재수생활의 시작
5살 아들의 승부욕을 보면서 유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릴 적 나는 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했다. 지면 이길 때까지 오기로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재수 생활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목표한 대학 그리고 학과에 가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인생과의 본격적인 첫 번째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오롯이 한 길만을 바라보았다. 다른 길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재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곁눈질을 하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생 때까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관학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처음엔 사관학교 1차 시험이 어렵다고 해서 수능 시험을 보기 전에 연습 삼아 보는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시험 접수를 했다. 이때의 나는 이 사소한 결정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우연히 같은 재수학원에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다녔다. 어릴 적부터 꿈이 조종사였던 친구다. 그 친구는 공군사관학교(이하 ‘공사’)를 가기 위해 재수를 했다. 우연히 수업시간에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사관학교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물었다. “왜 육사 시험을 보려고?” 나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답했다. “그냥 시험만 볼 거야. 연습 삼아.”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가 재수를 하면서까지 공사를 가려고 하는 이유를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비행기 타는 게 멋있지 않아? 전역 후에도 민간 항공사를 가면 해외여행도 자주 갈 수 있고.” 그 날이 사관학교 시험 접수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의 이야기에 팔랑거리면서 공사 시험 접수도 했다. 취소가 되지 않아서 둘 다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사관학교 시험은 같은 날에 진행되기 때문에 육사 시험비용은 포기해야 했다. 아직도 가끔 혼자서 생각해본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내가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둘 다 접수하고 육사 시험을 보았더라면? 그냥 둘 다 시험을 포기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흥미로운 상상이다. 가끔 혼자서 시뮬레이션하는데, 쉽게 그려지진 않는다.
사관학교 1, 2차 시험
재수생의 여유로움을 뽐내며 사관학교 1차 시험을 보았다. 간절하지 않았기에 기출문제를 풀어보지도 않았다. 수학이 어렵다고 했는데, 이거 정말 어렵구나. 생각을 하면서 부담 없이 그냥 풀 수 있는 만큼만 풀었다. 교복을 입고 온 친구들 중에는 한숨을 내쉬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이럴 수 있었다. 간절한 꿈이었다면 한 문제 한 문제 정성스럽게 풀었겠지.
1차 시험을 본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 합격자 발표가 났다. 의외로 합격. 1차 시험까지가 목표였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은 큰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불합격보다는 합격이 기분이 좋았다. ‘여기까지가 끝이다!’라고 생각했다. 2차 시험은 각 사관학교에 가서 면접과 신체검사를 하는 일정으로 이루어지고, 수능시험 바로 직전인 10월에 있다. 부모님과 학원 선생님은 수능시험을 위한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가지 않기를 바라셨다. 문득 2일 정도는 바람도 쐴 겸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답하라 1997>에서 처럼 친구와 나는 청주에 있는 공사로 2차 시험을 보러 갔다.
공사를 직접 가서 눈으로 보자 이런 삶은 어떨까? 생각을 했다. 돌아다니는 사관생도들이 멋있었고, 깔끔한 학교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다들 어릴 적부터 공사의 꿈을 간절히 그려온 친구들이었다. 재수, 삼수를 하면서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온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여행처럼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 소개란에 있는 것처럼 '나는 공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정해진 길이 있을까?
삶에 있어서 나만의 정해진 길이라는 것이 있을까? 가끔은 아주 작은 우연과 선택이 삶을 크게 바꾸어놓기도 한다. 다시 내가 이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대학교를 다닐 때 우연히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을 10년 후에 맥을 만들 때 적용을 했고, 맥은 아름다운 글꼴을 갖춘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고.
결국, 처음부터 정해진 길은 없다.
생각하고 꿈꾸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스무 살의 나를 만나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간절히 꿈을 꾸고, 그 순간을 즐기라고.
조금 더 돌아가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