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전략이 가득한 저녁식사
저녁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대화를 하나요?
<유대인의 지혜의 습관>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23가지 습관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아이들 공부 습관으로 유명한 하브루타부터 돈의 철학과 질문하는 습관까지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저는 23가지 중에서 '대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다양한 이슈를 두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된다.(중략) 그래서 유대인들의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우리보다 길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대화를 즐긴다.
<유대인 지혜의 습관> 김정완, 30쪽
여행중에 외국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음식보다는 대화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도 식전, 식후 그리고 디저트까지 먹으면서 쉼 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 식당에서 싫어하는 건 아닐까?'로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진지하고 재미있게 나눌까?'라는 궁금증으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만 보면 분명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꼭 필요한 대화만을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던 우리의 식사 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며 식탁에서 보드게임합니다.
6살 아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육은커녕 대화하기도 쉽지 않죠. 겨우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아들,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가 가장 재미있었어?"와 같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그 마저도 대답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아들이 기분이 좋을 때 서둘러서 밥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잠이 오거나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그 순간 평온한 저녁식사는 끝입니다.
아이를 식탁에 오래 잡아두기 위해 영상을 보여주거나 흥밋거리를 가지고 관심을 끌어봅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는 오래 잡아둘 수는 있지만, 대화는 불가능하죠. 가끔 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부모가 식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레고도 만들어보고, 보드게임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블로커스(Blokus)라는 게임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보았어요.
게임에 대한 아주 간단한 설명
개요.
1990년 미국 예일 대학에 유학 중이던 프랑스의 베르나르 타비탕(Bernard Tavitan)이 제안하고, 10년이 지나 피에르자케 주아르(Pierre-Jacques Jouars)가 상품화시킨 게임이다.
구성.
20X20 정사각형 게임판(최대 4명까지 가능).
4가지 색의 폴리오미노(모노 미노, 도미노, 테트로미노, 펜토미노) 1~5개의 정사각형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모양(21종류)이 주어진다.
게임 규칙.
1. 색깔에 따른 게임 순서가 존재합니다. 파랑-노랑-빨강-초록 순서.
2. 첫 번째 순서에는 귀퉁이에 블록을 내려놓는다.
3. 다음 순서부터는 기존에 깔린 자신의 블록의 귀퉁이가 접하도록 블록을 배치.
4. 더 이상 블록을 배치할 공간이 없으면 패스, 모든 플레이어가 패스하면 게임 종료.
5. 게임이 끝났을 때 남은 블록의 면적이 가장 적은 사람이 승리!
'밥 먹을 때는 밥만 집중해서 먹어야지! 무슨 게임이야?'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집중해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이 식사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식사시간이 기다려지면, 식사는 당연히 먹을 테니까요. 지금은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식탁에 와서 앉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대화로 연결되는 화기애애한 저녁식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밥상머리 보드게임의 장점
장점 1. 아이가 식사시간을 기다려서 가장 먼저 자리에 앉습니다.
저희 집은 장모님, 아들, 아내 그리고 저까지 4명의 게임 멤버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게임을 하는 데는 4명이 적정합니다. 2~3명도 할 수 있지만 긴장감이 떨어져요. 아들은 식사를 준비하는 장모님과 아내를 애타게 부릅니다. "할머니, 엄마 어서 와요! 게임 시작해야죠."라고요. 게임 덕분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보통은 "아들, 음식 식기 전에 서둘러서 밥 먹자. 빨리 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장점 2.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하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야만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식사 중에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6살 아들과 공통된 관심사를 갖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긴 어렵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갑니다. 게임을 하는 도중에 쓱 유치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물어보고, 이 게임이 무슨 이유로 재미있는지도 물어봅니다. 가끔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아들은 명쾌한 답을 주네요. "아빠, 집중해서 해야 해요. 다음에 어디에 무엇을 둘 것인지도 고민하고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는 길도 고민해야지요."
장점 3.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가끔은 지는 법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 어른이 이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른들이 계속 이기면 아이들은 금세 흥미를 잃습니다. 지는 게임은 재미가 없으니까요. 적절히 이기고 또 가끔은 져주는 게임을 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게임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어느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른들이 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2번이나 꼴등을 했습니다. 승리의 세레모니를 외치던 아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합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아이에게 승리의 기쁨도 알려주어야 하고, 패배의 슬픔과 그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법도 부모가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기는 게임보다는 지는 게임이 더 많을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실패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패배를 알려주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제가 더 많이 지기도 합니다. 그 실패에서 어른들도 배우고 성장합니다.
아들은 게임을 하면서 여유롭게 아빠를 격려합니다. "아빠, 불가능은 없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어요." '불가능'이란 말을 어디서 들었냐고 물어봅니다. 엄마가 읽어준 책에서 보았다고 말하네요. 바로 이 책입니다. EQ의 천재들이라는 시리즈의 <불가능은 없어씨>, 책의 주인공인 '불가능은 없어씨' 표정에서 여유가 가득 느껴지네요. 이 시리즈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씨, 엉뚱씨, 장난씨, 웃음양, 멋져양 등의 다양한 캐릭터가 나와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들이 말한 이 책에서 '불가능 없어씨'는 지붕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고, 투명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죠.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난 '빙그레'라는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가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대신 풀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보드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밥상머리 교육의 일부입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해서 '이것은 해야만 해', '이것은 하면 안 돼'라고 엄격하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빠, 불가능은 없어! 더 열심히 해야지!!'
정말 힘을 내서 하루를 살아야만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