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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카드가 될 것인가! 히든카드를 쓸 것인가?

일에 대한 진심을 담아,

by 송곳독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하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바로 '일'에 대한 고민인데요. 이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삶을 나타내는 단어는 '중용', '균형', '평정'입니다. 셋 다 비슷한 의미입니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말하고,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를 말하며, 평정은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뜻하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꾸준히 책을 읽고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중용과 평정심은커녕 일상적인 삶에서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인사이동 후 3개월이 지났습니다. 보통 3개월 정도면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6개월이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요. 3개월이 지나도록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근하는 날도 더 늘어만 갑니다. 야근을 한 다음날은 멍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균형과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이 힘들 때면, 마음은 자연스레 과거의 삶과 선택을 떠올립니다. 그다음에는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습관인 머릿속으로 상상의 세계로 연결됩니다. 바로 '만약에….'라는 가정의 말이죠. 내가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부서를 택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서 이런 생각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매번 생각나는 것을 보니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동시에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사관학교 생활을 이겨낸 자신감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10년도 더 지나버린 그 기억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해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억에서는 블러 처리가 되어 행복하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은 과거보다 힘든가 봅니다.


학교생활이 아닌 일을 하면서 보낸 10년의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심 탈렙이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까지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내가 한 노력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아온 시간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작아지고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죠.


히든카드가 될 것인가!


'인정'에 목마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흐름의 중심에 있고 싶었고, 관심을 받고 싶었습니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아웃사이더보다는 히든카드가 되고 싶었죠. 머릿속에는 어릴 적 보았던(지금도 보고 있는) 만화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히든카드'라는 말을 듣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실력은 없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을 잘한다는 것> 책의 저자인 구스노키 켄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다가 참 멋진 말을 했어요. 솜씨 좋은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은 예술에 가까워서 그 바텐더를 찾을 수 없다고요. 저는 이스트우드의 이 인터뷰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든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아, 이 사람이 왔으니 이제 문제없어' 하는 느낌, 이런 수준으로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 72쪽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저도(그리고 슬램덩크의 백호도)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저 운과 환경이 좋아서 약간의 성과를 더 냈을 뿐, '이 사람이 왔으니 이제 문제없다!'라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저 그 사람의 기대보다 조금 더 잘했던 것뿐이지요.


히든카드를 쓸 것인가?


자신이 가진 실력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2가지입니다. 그 민낯을 보완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거나 아니면 도망가거나.


쉬운 방법은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근데 도망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120%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때는 히든카드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더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쉬어가야 합니다. 무리해서 나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삶에서 '나만의 히든카드'는 필요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던질 수 있는 '조커'와 같은 히든카드 말이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면 조금 쉬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히든카드를 쓰고 잠시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부서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자신을 파괴할 수준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마음속의 히든카드는 말이죠.

스무 살부터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카드인데요. 삶이 정말 힘들다고 느껴질 때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하염없이 걸어보는 것입니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나이 마흔에 자신의 일을 다 내려놓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순례자>라는 첫 책을 적었고, 그다음 책이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연금술사>가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하나의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더 편안해집니다. 제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는 꼭 하나 이상의 여분이 있을 때만 먹는데요. 그 심리도 든든한 히든카드를 하나 가지고 있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히든카드를 쓰겠다는 말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아직은 히든카드를 쓸 때가 아니에요. 제가 힘들 때면 듣는 음악이 있는데요. 무한도전에서 유느님과 이적이 만든 <말하는 대로>라는 음악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일단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진심을 담아,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노력 말이죠. 이 정도면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볼 생각입니다. 무언가를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일부분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러다가 히든카드가 된다면 더욱 좋겠죠. 처음에 말한 '이 사람이 왔으니 이제 문제없어'라고 불리는 인재가 되는 것도 꿈꾸어 봅니다.


하지만 히든카드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는 마음속에 품어놓은 히든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할 생각입니다. 나만의 히든카드를 들고 이 길을 걸어가 봅니다. 그 결과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 수 있겠죠.


히든카드가 되었는지, 히든카드를 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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