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지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믿으세요, 퇴고의 힘을
퇴고를 하지 않는다는 기인 작가도 드문드문 있기는 하다(빚에 쪼들려 원고를 빨리 써내야 했던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천재들을 제외한 우리 절대다수의 글은, 고칠수록 분명히 나아진다. 조금 나아지는 게 아니라 아주 확확 나아진다(사실 도스토옙스키도 퇴고를 했더라면 글이 더 나아졌을 것이다). 세 번, 네 번씩 퇴고를 해서 초고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깨닫는 경험을 하면 이 작업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 힘을 믿자.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227쪽
보고서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인사이동 후에 높은 분들께(?) 보고서를 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보고서를 쓰는 빈도와 함께 속도도 빨라져야만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보고서를 쓰면서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아! 조금만 더 여유롭게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쓰면 더 잘 쓸 텐데…”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은 항상 부족합니다. 마감시간에 맞추어 보고서를 만들어내기 바쁩니다. 정신없이 보고서를 작성해서 상사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면, 분명 작성할 때 보이지 않았던 오타와 이상한 문장이 눈에 쏙쏙 보입니다. 한 번에 통과하는 보고서를 적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과 상사가 생각하는 그 핵심이 다를 경우가 많죠. 나름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보고서에 있는 글은 제 글이 아닌 느낌입니다. 뭔가 내 안의 다른 사람이 적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보고서 쓰는 바람직한 태도와 마음가짐
처음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첫 보고서를 만들었던 기억도 끄집어내어 봅니다. 벌써 10년도 더 된 기억이네요. 처음으로 보고서를 쓸 때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적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의 상사도 정말 꼼꼼하셨던 기억이 납니다(꼼꼼하고 힘들게 했던 분들이 더 많이 기억이 나는 것은 왜일까요?).
시간은 없고 그럴듯한 보고서를 쓰고 싶었습니다. 전임자의 PC에 남아있던 몇 개의 보고서를 쓱 살펴본 후에 비슷하게 작성했습니다. 내용도 잘 알지 못한 채 그저 그럴듯하게 형식만 갖춘 첫 보고서가 생각나네요. 물론 수많은 피드백 후에 통과되긴 했지만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실제로 보고서를 연습 삼아 작성해보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글을 잘 쓰지는 않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고민해서 직접 글을 많이 써 본 사람만이 글을 잘 쓰게 됩니다. 보고서도 같은 이치입니다. 쓰면 쓸수록 조금씩 더 잘 쓰게 됩니다. 이건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주 쓰다 보면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함에서 천천히 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개요를 간단하게 쓰고, 추진경과를 적은 다음, 현재 문제점을 파악한 후 해결책을 제시하자”
“일단 문제점에는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문제를 가장 먼저 넣고, 그다음에는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글을 적어가는 노하우가 조금씩 생겨납니다. 아직은 보고서의 고수가 아니기에 명쾌하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생활 15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보고서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피드백을 즐기기!!!
보고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내용'이라고 답을 하겠죠. 특정 사람들은 아름다움, 조화로움, 그럴듯함(?), 화려함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보고서를 쓰는 시간을 매번 부족합니다. 어쩌면 보고서를 여유롭게 쓰는 그 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을 조금 바꾸어볼까요? 만약 방학숙제를 할 때처럼 여유가 있다면? 당연히 보고서가 잘 써지지 않겠죠. 쓸 생각도 하지 않을 거예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감시간에 맞추어 글을 쓰기 시작할 확률이 많습니다. 데드라인을 두고 약간의 쪼임(?)을 느끼면서 보고서를 쓰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고서를 쓸 때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쓸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상사에게 1차 검토를 받습니다. 빠르게 쓰면 내용이 부실하다고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어쩌면 빠르게 쓰는 것과 천천히 쓰는 것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급하게 쓰는 글이 집중해서 잘 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늦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서둘러서 잘못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빠르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일단 상사에게 들이밀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사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내가 작성하고 있는 이 글의 방향성이 맞는지, 내가 모르고 있는 내용을 알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수정하면 됩니다. 이 방법의 또 가장 큰 장점은 일단 한 번은 상사가 보고서를 확인했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안심을 줄 수 있습니다. 안심과 함께 나에게는 조금 더 여유롭게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생겨납니다.
글의 시작에 인용한 장강명 작가님의 말씀처럼, 글은 고칠수록 분명히 나아집니다. 보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칠수록 분명히 더 있어 보이는 보고서가 작성됩니다. 표도 하나 추가되고, 관련 근거도 들어가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해도도 높아집니다. 그러니 보고서도 글쓰기처럼 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은 던져보는 겁니다. 뭐, 조금 혼나기밖에 더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