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이 아이에게...
가수 이승환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20대에 즐겨 듣고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고, 그의 노래가 주는 애절함이 좋습니다. 이별의 추억이 없는 저에게도 마치 그런 기억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노래입니다. 그렇게 <천일동안>은 삶이 힘들 때마다 듣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듣고,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연애시절을 생각하며 듣고, <덩크슛>은 슬램덩크를 생각하면서 듣습니다(하하).
오늘의 선곡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입니다. 무슨 억울한 일이 있냐고요?
사랑이 잠시 쉬어간대요
나를 허락한 고마움, 갚지도 못했는데
은혤 잊고 살아, 미안한 마음뿐인데
마지막 사랑일 거라
확인하며 또 확신했는데
욕심이었나 봐요
저는 레고 전문 작가입니다.
2021년을 돌아보며 브런치에서 제가 쓴 글을 분석해주었습니다.
2년 차 작가, 누적 뷰 18.8만, 발행 글 70+ 그리고....
레고 전문!
작년에 레고 덕분에 브런치 글이 Daum 포털 메인에도 올랐고, 제 글을 10만 명이 읽는 놀라운 경험도 했습니다. 그 경험에 힘을 얻어 연달아 레고 관련 글을 적었습니다. 다른 글도 적었지만, 사람들이 더 좋아해 주는 글은 레고와 관련된 글이었어요. <아빠도, 레고>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북까지 발행했으니, 그걸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레고'는 마무리하고 '아빠랑 예체능'이란 제목으로 글을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빠는 레고'에 적합한 글을 하나 더 적어보겠습니다(종종 이럴지도요).
아들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감을 보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레고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마블 세계를 좋아하던 아들은 DC 세계로 넘어가 배트맨까지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배트맨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또봇? 미니 특공대! 그리고 공룡(그중에서도 익룡, 프테라노돈)까지 세계관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1번은 레고! 그중에서도 아이언맨이었죠.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주말엔 종종 아들과 장난감 가게에 가곤 합니다. 장난감 가게의 이름(토이 000)도 알지만, 아들은 '20분 걸리는 곳'이라 부릅니다. 집에서 20분이 걸리는 곳에 있다고 해서 정해진 이름입니다. '15분 걸리는 곳'도 있고,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 가고 싶을 때는 '000몰, 000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끔은 서점이나 다이소에서 장난감을 사기도 합니다.
오늘 오전에는 서점에 들러 1차 탐색, 스치듯 다이소를 지나, 빠르게 '20분 걸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서점에서 아이언맨 피규어를 들고 고민하던 아들은 묻습니다.
"아빠, 이거(아이언맨) 사면 20분 걸리는 곳은 안 가요?"
저는 여기서 장난감을 사면 안 간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너무나도 쉽게 아이언맨을 내려놓습니다.
"아빠, 가요!"
다이소에서도 비슷하게 살펴만 보고 살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 차를 타고 '20분 걸리는 곳'으로 향합니다. 자주 가서 T맵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곳이죠. 그래도 항상 T맵을 켭니다. 아들이 뒷자리 카시트에 앉아서 5분에 한 번씩 이렇게 묻기 때문입니다.
"아빠, 몇 분 남았어요?"
15분 남았다고 이야기하면, 5분 정도 있다가 어김없이 다시 묻습니다.
"아빠, 이제 10분도 안 남았어요?"
차가 막히지 않아서 시간이 더 적게 남았다면 아들의 환호가 이어지고, 혹시나 차라도 막혀서 10분 이상 남았으면 큰 아쉬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난감 가게에 가는 아들의 모습은 얼마나 밝은 줄 모릅니다. 그걸 바라보는 제 모습도 밝아집니다.
아이언맨, 배트맨도 오늘은 안녕~
보통은 장난감 가게의 구석구석을 다 살펴보고, 1층과 2층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고민하고, 최종 후보를 2개 정도를 가지고 비교해서 사는 아이입니다. 장난감의 배열이 '또봇'을 지나 '미니 특공대' 그리고 마지막 코너에 '레고'가 있는데요. 아빠인 저는 그래도 완제품 장난감보다는 만드는 재미가 있는 레고가 여전히 좋습니다. 역시나 사심 가득한 아빠의 마음이죠.
아들이 또봇에 한참 머물고 있으면, 다음으로 가자고 은근 재촉해봅니다. 아니면 혼자서 쓱 그쪽으로 이동합니다. 아들은 아빠를 찾다가 결국은 그곳으로 오게 되죠. 미니 특공대의 화려한 로봇 장난감들을 겨우 지나 레고에 도착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들이 또봇을 쿨하게 지나치더니, 미니 특공대도 쳐다보지 않고 휙 지나갑니다. 혼자서 생각합니다. '오늘은 바로 레고인가?'라고요.
잠시 후 아들은 레고의 아이언맨도 배트맨도 아닌 프테라노돈 장난감 상자를 들고 옵니다. 심지어 레고보다도 비싼 이 장난감을 말이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저는 협상을 시작합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해봅니다.
"아들! 그것도 좋은데, 레고 신제품 나왔는지 한번 볼까?"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시킵니다. 1월이기 때문에 레고 신제품이 나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빠도 다 계획이 있습니다(하하). 역시나 아들이 좋아하는 배트맨과 아이언맨 신제품 레고가 있습니다. 아빠가 더 호들갑을 떨어봅니다.
"우와! 배트맨 신제품이 나왔네. 이번 아이언맨 레고는 가슴에서 불빛도 나온데!!"
평소 같으면 쪼르르 달려와서 정말이요? 하며 관심을 보였을 아이인데,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도 불빛이 나오는 아이언맨 레고는 강렬했는지, 잠시 집어 들고 갈등을 합니다. 속으로 오늘도 아빠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한 찰나, 아들은 과감하게 레고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아빠, 오늘은 프테라노돈으로 할래요."
이 말은 듣는 순간, 잠시 주춤했습니다. 함께 온 아내도 제 마음을 알아채고 옆에 있던 미니 특공대로 아들을 데리고 가 봅니다. 가격이 두배나 비싼 5단 변신 로봇과 7단 합체 로봇을 보여줍니다. 그냥 보기에도 훨씬 좋아 보이는 장난감입니다. 평소에 한참을 서성이며 바라보던 장난감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것도 아니라고 하네요. 이제부터는 아빠와 아들과의 신경전입니다. 저는 레고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들은 프테라노돈 앞에서 서 있습니다.
혼자 서서 내 머릿속의 다른 아빠들과 이야기합니다.
아빠 1 : 아무리 그래도 레고가 프테라노돈에게 지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빠 2 : 그럼! 프테라노돈보다는 레고가 좋지. 차라리 있어 보이는(?) 미니 특공대를 사면 좋겠는데...
아빠 3 : 그건 어른들 생각이고! 아들의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 아빠의 의견이 뭐가 중요해?
아빠 1 : 아니! 그래도 프테라노돈이 레고보다 비싼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빠 3 : 뭐, 그럴 수도 있지. 겉모습은 저래도 속에는 더 좋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아빠 1 : 그래도 나는 반대야.
아빠 3 :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
그때 아들이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아들 : 아빠! 나는 이 프테라노돈으로 할래요.
논의 중이던 아빠 1이 갑자기 나섭니다.
아빠 1 : 그래, 그럼 당분간은 장난감 안 사줄 거야!
(머릿속에서 다른 아빠들이 이야기하죠)
아빠 2,3 : 이건 무슨 생떼인가? 아빠답지 못하게...
시무룩해진 아들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얼굴에는 서운함을 담고서 말이죠.
아들 : 아빠, 그럼 1주일만 더 고민해볼게요.
그 순간 아빠 3이 대답합니다.
아빠 3 : 아니야. 오늘은 아들이 좋아하는 프테라노돈으로 사자!
이렇게 아이언맨이 1등에서 내려오고, 프테라노돈이 당당하게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아들은 얼마나 기쁜지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인증사진도 하나 남기고, 상자도 직접 들고 가겠다고 하네요. 기뻐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스쳐갑니다.
싯다르타, 당신은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때리지도 않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물이 바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사랑이 폭력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당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착각 아닐까요? 당신은 그 아이를 사랑의 끈으로 묶어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싯다르타, 164쪽>
그래도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생길 텐데요. 그때마다 이 글을 잊지 않고 생각해야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빠인 저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갈 아들의 선택일 테니까요.
그러니 사랑이 변하는 것도 성장의 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따져 물어도, 이미 변해버린 마음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어릴 적부터 선택은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죠?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선택으로 힘들어할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