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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May 01. 2022

나에게는 30꼭지의 글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일까요?

지난 1년간 매일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그 간절함이 현실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삶이 주는 즐거움과 기회에 놀라곤 합니다. 14년이란 기간 동안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많은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글로 적어 책으로 만들고 싶었죠.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오롯이 제 마음과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글만 적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쉽게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반성해봅니다.


2021년 3월,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 출간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작가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계약을 했으니 이제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책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죠. 투고를 하면서 이미 적어놓은 글이 20꼭지 넘게 있었고, 마감 기한도 넉넉했습니다. 건방지게도 조금 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서둘러서 책을 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내가 쓴 글에 대해 제 스스로가 자신이 없기도 했고, 지금까지 다양하게 시도했던 독서법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주일에 1꼭지 정도의 글을 쓰는 것으로 출판사와 협의했죠. 매일 천자씩 글을 쓰던 열정적인 시기라서 1주일에 1꼭지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죠. 매주 일요일 저녁에 출판사에 글을 보내기로 약속했으니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초안을 가볍게(?) 쓰고, 목요일은 쉬고, 금요일과 토요일에 퇴고까지 한 후 일요일에 보내면 되겠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뭐 어렵지 않은 계산이고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권투선수 타이슨의 말이 떠오릅니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처음 두 달 정도는 매주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계획대로 한 주의 초반에 글을 쓰고 퇴고하고 보내는 루틴을 반복했어요. 당연히 한두 번 퇴고를 거친 글이라서 가끔은 제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서부터 자연스럽게 뜨거운 열정은 사라지고 미지근한 의무만 남았습니다. 퇴고를 생략하고 일주일에 겨우 한 꼭지의 글을 완성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 꼭지의 글을 작성하는 시간도 길어져서 2주에 한 꼭지의 글을 적을 때도 있었습니다.


30꼭지를 쓰는 것이 목표였으니, 처음 의지대로라면 30주 7개월 정도면 마무리가 될 것을 10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렇게 30꼭지의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나에게는 30꼭지의 글이 있습니다

(퇴고가 되지 않은 급하게 쓴 글이…)


얼마 전에 인사이동을 했습니다. 얼마 전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것이 벌써 6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보통 적응하는데 3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6개월이 지나도 시간이 나지 않네요. 여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퇴근해서도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원래 글을 쓸 때 한 번에 쭉 쓰는 성격은 아닙니다. 한 문단씩 쓰고 이어 붙이는 글을 쓰는데, 여유가 없어 퇴고를 못하니 글도 조각조각으로 가득한 느낌입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퇴고의 순간이 찾아왔네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마지막 부분이 떠 오릅니다. 사막을 건너는 그 순간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마지막 관문인 사막을 건너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30꼭지의 글을 읽고 수정할 부분과 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글에 ‘스토리’를 좀 더 담았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내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덧붙이시는 것을 보니 이야기를 넣긴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어디서부터 수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0꼭지의 글에 내 이야기를 어떻게 녹여서 낼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지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키보드에 손이 가지도 않고요. 그때부터 스스로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내가 쓴 30꼭지의 글에서 말이죠.


결국, 책쓰기를 잠시 멈추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진출처 : Photo by camilo jimen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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