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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맺는다는 것

by 승하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쩐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아무런 편견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싶어도, 어느샌가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의심의 그림자가 슬며시 스며든다. '이 사람은 무슨 의도로 내게 다가오는 걸까?' 하는 불필요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고,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마음속 경계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과연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쌓아 올린 의심의 벽에 갇힌 걸까? 분명 누군가의 선의가 느껴지는 순간도 있는데 왜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의심부터 하게 되는 걸까? 좋은 마음이라 해도 언젠가 악의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이 어쩌면 진짜 악의보다 더 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의심보다는 호기심이 컸고 상대에게서 보이는 작은 따뜻함에도 쉽게 마음이 녹아내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복잡해진 걸까. 어쩌면 많은 경험이 상처와 실망을 남기면서 그 기억들이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내가 올린 벽 뒤에서 혼자 남아 외롭게 사는 모습이 떠오르면 그 역시 서글프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결국 이 모순적인 마음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는 사람의 선의를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직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 의심과 따뜻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디더라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호기심과 신뢰의 씨앗을 놓지 않고 싶다. 언젠가 다시 아무런 편견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맞이할 수 있는 용기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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