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반년

by 유칼리

아이 독감 등의 사정으로 2주간 수업을 빠져 요 며칠 모처럼 한가롭다. 센터를 옮긴 지도 반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의 학습 니즈가 변해가는 걸 느끼고 고민 끝에 지금의 FIE(스스로 사고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중재학습) 수업을 시작했다. 초2 때, 발달이 다소 느리다는 진단 결과에 따라 수년간 착실히 인지학습을 하면서 학습의 기초체력은 많이 다져졌지만 암기 위주의 학습만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다는 판단이 섰다. 3년 반만의 웩슬러 검사 결과도 이런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양상이 좀 달라졌다고 할까? 아이가 힘들어했던 부분은 많이 보완되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필요한 추론과 처리속도에서 신중하고 또 신중한 아이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 학습량은 점점 더 많아질 테고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인지학습을 시작할 때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인터넷 발달 카페를 참고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근처에 인지학습을 제공하는 발달센터가 제법 많았지만 아이의 연령, 발달 단계, 필요한 학습의 내용과 질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인지학습은 그 전문성을 인증해 주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다. 다양한 사설 협회, 학회에서 저마다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고 선생님들의 역량과 제공할 수 있는 수업도 천차만별이다. 그럼 어떻게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까? 별 수 없다. 맨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처음에는 소아청소년과의원 부속 발달센터로 갔다. 꽤 유명하고 큰 곳이었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취학 아동들이었고 인지학습보다는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을 주로 한다는 점이었다. 인지학습 수업을 제공하고는 있었지만 수업을 진행할수록 아이의 수준과 학습 니즈를 고려한 수업인지 의문스러웠다. 웩슬러검사 결과, 아이와 진행한 학습을 바탕으로 수업 계획을 수립한다기보다는 수업 후 상담 시간에 듣게 되는 엄마의 생각과 요구 사항을 그때그때 반영하는 것 같았다. 인지학습이라는 것이 맞춤형으로 유연하게 제공된다지만 주먹구구식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센터를 옮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수업 후 진행되는 알맹이 없는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 때문이었다.


꾸준히 수업받다 보면 좋아질 겁니다(암요)


상담 때마다 반복되는 건 엄마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발달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소개와 뜬구름 잡는 격려(?)가 다였다. 선생님은 아이의 학습, 발달 특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따로 구체적으로 언급할 내용도 없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실망스러웠다. 고객 유치를 위하여 보험 처리용 진단에 더 신경을 쓰는 곳. 여긴 바이바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센터는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인지학습을 전문으로 수업하시는 분이 아니고 학습 관련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 경우였다. 인지학습은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연령, 발달 상황에서의 수업 경험이 풍부하신 선생님이 필요하다. 2년 경력의 다른 치료, 심리상담 수업을 주로 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은 패스.


네 번째 센터는 선생님의 전공, 학력, 경력 모두 전문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하신다고 했고 전화 상담도 친절하고 자세했다. 그런데 웬걸. 아이의 테스트 후 테스트지와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초등 2학년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나도 선뜻 풀기 어려워 보이는 연산 문제가 잔뜩 있었다. 아..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 경험이 없으신 게 확실했다. 여기도 안녕.


몇 달간의 삽질 끝에 지칠 대로 지쳐서 찾아간 곳이 마지막에 정착한 센터이다. 이 선생님께서는 인지학습 경력이 20여 년에 달했고 초등부터 고등까지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셨다. 웩슬러 검사결과와 함께 별도의 학습진단검사를 거친 후 수업 방향에 대한 상담을 해주셨다. 아이는 선생님과 충실하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기억과 인출에 대한 연습을 해왔다. 느리지만 그렇게 하나씩 꾸준히 계단을 올랐다.



이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다시 안녕을 고했다.

아이는 어제를 떠나 오늘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도.




매거진의 이전글나보다, 제일 좋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