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수다쟁이다. 요즘엔 해리포터에 푹 빠져서 몇 달째 해리포터 책만 읽는다.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해리포터 퀴즈 지옥에 허우적대고 있다. 요즘 아이가 가장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학교 친구들이 아니라 해리, 헤르미온느(진짜 발음은 '허마이오니' 란다), 론, 말포이이다. 이대로라면 중학교가 아닌 호그와트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죽음을 먹는 자들에 맞서기 위한 마법 지팡이랑 망토도 준비 완료.
수다에 강하지만 디테일에는 다소 약한 딸내미는 그중에도 비교급과 최상급 표현이 어렵다. 적절한 관형사를 골라 쓰는 것도 어려운 모양이다. 가끔 외국인이 문법 실수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엄마, 다른 아이들은 그걸 좋아하고 또 다른 아이들은 저걸 좋아한대."
"먼저 '어떤' 아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데? 무언가 먼저 얘기하고 그것과 비교할 때 '다른'을 쓰면 돼."
"저것들보다 이게 제일 유명해."
"저것들 '중에서' 이게 제일 유명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비교할 때는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최고를 표현할 때는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그때마다 설명해 주곤 하지만 아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하다. 아무려면 어떻냐는 듯.
얼마 전 3학년 무렵부터 수학 공부를 봐주던 아빠가 수업 중 아이가 던진 연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춘기 들어 수업 시간에 잦은 반항과 다툼이 이어져 나도 옆에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던 터라 그러라고 해버렸다. 대안은? 없다. 당장 수학 학원에 가면 적응이 힘들 것이다. 실력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감당해야 할 숙제량도 만만찮을 테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면 또 자신감이 떨어지겠지. 무엇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떠먹여 주고, 힌트를 줘서 풀어나가는 그 문제 말고. 이제 아빠랑 실랑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이는 더없이 명랑해져서 혼자서 수학을 공부해 보자는 내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딸아이는 이제 매일 시간을 정해 수학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오답노트를 정리하고, 모르는 문제는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가끔 노트를 확인하는 아빠는 가르쳐준 대로 안 하고, 가르쳐준 걸 또 틀린다고 답답해한다. 그 얘길 듣고 생각해 본다. 나는 '배운 대로' 살고 있고, 배운 걸 '안 틀리고' 다 잘하고 있는가. 나는 그저 혼자서 조용히 1시간 반씩 수학 문제지를 펼쳐놓고 문제들과 씨름하고 노트에 자기 나름대로 끄적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할 뿐이다(읽어보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식탁에 앉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적어도 내 눈엔.
최근에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인터뷰를 읽었다. 보스턴에 머물고 있는 그는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 있었던 시기가 지옥 같았고, 죽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주변의 잡음과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만의 음악을 연주하길,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같은 이유로 딸아이의 지그재그 샛길의 풍경을 응원한다. 내가 할 일은 그 길만이 가진 이야기를 천천히 보고 들으며 같이 손잡고 걸어보는 것일 테다.
비교하지 말고, 그중에서 최고를 골라내지 말고.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 너 하나야.
너 그대로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