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끝에 논술학원 선생님이 혼란스러운 듯 내뱉으며 말씀하셨다. 핸드폰 너머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아이가 토론 및 논술학원을 다닌 지는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야외 활동을 하기 힘든 겨울 방학, 내향적인 아이가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여럿앞에서 의견을 나눠볼 수 있는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방학 동안만 다녀볼 심산이었지만 아이가 생각보다논술 수업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친해져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시간이 그저 좋았으리라. 수업 전에 살펴본 교재는 분명 아이에게는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읽을거리를접하고, 생각할 기회를 갖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도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하태평인 엄마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그룹 수업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애로사항들을 전하며 피드백을 해주셨다.
"어머님, 아이가 수업시간에 자기 차례가 되면 긴장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는 걸 힘들어해요"
"아이가 자존감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에요"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끌어 주고 싶어 하셨다. 수업시간에 아이가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셨지만 더 욕심이 나신 듯했다. 점점 지적사항과 숙제들이 늘어갔고 특강도 제안하셨다. 내 변명 같은 답변도 그에 따라 늘어 갔다. 동갑인 친구들과 그룹으로 진행되는 수업이고 아이가 또래 친구들의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하니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대로 하고 싶다, 학교도 마찬가지인 환경인데 아이 마음 다칠까 자존감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있다,단, 아이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푸시하는 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순간 당황하신 것 같았다. 10여초의 정적이 흐른 뒤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대체 이 수업에서 기대하는 게 뭐냐고.
"엄마, 내가 느려?"
아이가 작년에 갑자기 던진 말에 가슴이 덜컥했다. 2년 전, 발달센터에서 인지학습을 시작하면서 아이는 줄곧 이게 일종의 '국어 수업'이라 생각해왔다. 나도 당시 아이의 눈높이를 생각해 '글을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센터도 학원 같은 거라고 생각해 왔다. 아이 앞에서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다른 아이들과 스스로 비교해 가며 뭔가 알게 된 눈치였다.
"느리다고 느낀 적이 있어? 근데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남들과 비교하는 것보다 내가 꾸준히 성장하는 게 훨씬 중요한 거야. 속도는 사람마다 다 달라. 느린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빠른 게 좋을 것도 없어."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답변을 대수롭지 않은 듯 던지고 재빨리 아이 얼굴을 살폈다. 예상외로 아이에게는 꽤 설득력이 있었는지 안심한 얼굴이었다. 마음속은 죄여오고 돌아서면 눈물이 쏟아질 때가 많지만 아이 앞에서는 태연한 척, 별일 아닌 척하는 게 익숙해졌다. 아니. 이제 되려 아이가 너무 별일 아닌 듯 여기는 것 같아 가끔 긴장하라고 한 마디 쏘아붙인다. 엄마가 뭐랬어. 태도가 제일 중요하댔지!
언젠가부터 내 말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을 느낀다. 말을 꺼내려다가 삼키키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 학년이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습, 관련 사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커지기 마련이다. 어느 집 아이가 똘똘하고 어느 학원 최상위반에 다닌다고 소문이 나면 관심이 집중되고 너도 나도 학원 정보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 집 아이 엄마는 비법을 캐묻는 엄마들의 질문 공세에 난처해하지만, 짐짓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나는 내세울만한 학원을 보내는 것도 없을뿐더러, 나름 선별해서 하고 있는 사교육에 대해서도 그 누구도 아무 관심이 없다. 아, 이게 아이 성적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던 그건가? 씁쓸한 생각이 들면서도 마주 앉은 엄마들과 입장을 바꿔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게 쉽게 인정이 된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있었다. 어깨에 잔뜩 힘 들어갔던 우리 엄마. 승부욕이 강했던 동생은 학창 시절 1등을 도맡아 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벼슬인지 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그리 충실하지 않고, 졸거나 수학시간에 국어를 공부하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 앞에서 그런 동생을 변호하기까지 했다. 동네 학원들로부터는 광고효과를 노린 것인지 원비를 안 받을 테니 아이를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엄마는 늘 비결을 궁금해하는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샀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정점에 올랐다. 동생, 그리고 엄마가 했던 일들은 인과 관계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게 의미가 부여되고 결과를 더욱 빛나게 하는 미담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아마도 이렇게 공부에 대한 높은 관심과 결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테다. 논술학원 선생님께서 의아해하신 이유가. 이 엄마는 기껏 학원 보내놓고 아이 학습에 대해서 기대와 관심이 없는 건가? 왜 글쓰기 결과물을 보고도 아무 얘기도 안 하지? 왜 아이가 잘 못 따라간다고 하는데 긴장하고 더 시키려고 하지 않지? 이런 의문들 때문에 모든 게 함축된 저 질문을 던지신 게 아닐까. 알고 보니 다른 학부모님들은 매달 아이의 글쓰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체크하고 기대하는 목표치를 정확하게 요구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아이가 발달센터에 다닌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아이한테 당장 가능한 학습이 무엇인지, 아이가 겪는 어려움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어떻게 다른지, 아이한테 기대하는 것보다 아이한테 필요한 수업이 무엇인지 이해시켜 드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선생님과 엄마의 실랑이를 알 길이 없는 아이는 그저 오늘도 즐겁게 학원에 간다. 힘들 때도 많지만 예상치 못하게 희한한 구석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영어 단어랑 한자도 이제 곧잘 암기한다. 모든 숙제와 글쓰기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도와달라고 요청할 줄 알고 어디까지 해 볼 수 있다고 말할 줄 안다.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것을 확인하고 그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아이가 나도 자랑스럽다.
선생님, 저 바라는 게 없지 않아요. 사실 바라는 게 아주 많습니다. 아이의 속도대로 지금처럼 꾸준히 성장하는 것, 눈앞의 결과에 따끔할 때가 많겠지만 하나씩 도전해 보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믿고 또 즐기며 가보는 것, 점수가 아닌 말과 글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끝이 없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