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by eudaimonian

새로운 교실에서 첫 학기를 시작할 때
관심 있는 동아리에 자기소개서를 낼 때
취업하기 위해 지원서를 쓸 때

이름 나이 주소 다음으로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는 기본항목, 취미.

별생각 없던 어린 시절에는 주변 아이들 중 90%는 썼을 법한 독서라든가 음악 듣기라든가를 써냈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악기 연주나 여행과 같이 긍정적으로 차별화될 것 같으면서도 뭔가 무난한,
그저그냥 한 번쯤 해봤거나 잠깐 관심을 가져봤던 무의미한 단편들을 늘어놨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10대 시절과 평가의 연속이었던 20대를 어느 정도 마무리짓고 훌쩍 30대가 되고 나서야 지난 몇십 년간 무심하고 시큰둥하게 대했던 '취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취미 [趣味]


한자의 뜻을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멋과 맛"이라는 소리인데, 결국에는 '나 스스로가 감흥을 느끼고 아름답게 여기며 즐기는 멋과 맛'이 곧 '취미'라는 셈이다.

그래서 나에게 그러한 멋과 맛은 무엇인가.

슬프게도 아직 그것을 모른다.
지난 30여 년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행복한 삶을 향해 달렸는데 나란 녀석은 고작해야 그 쉽게 말하는 취미 하나 없는, 취미 하나 가지지 못한 불쌍한 인간이군.
-라는 생각이 요 몇 년간 들었더랬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하며 위안한다.
많은 이들이 그 작은 질문 앞에서 그 빈칸 정도의 당혹스러움과 좌절을 느꼈겠지.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일을 마구 해대고, 막상 해보니 재미가 없거나 기대와 다르다면 아무 죄책감 없이 관두고, 또 다른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자유롭게 찾아다닐 생각이다.

세상에는 코딱지만 한 권한을 주고서는 한 무더기의 책임감을 얹어주는 일이 너무 많기에 -

최소한, 정말 이것만이라도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데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책임감 끈기 운운하는 참견 듣지 않고 마구잡이로 하고싶다.

이 세상이, 인생이 -
나에게 그 정도의 권한은 기꺼이 무상으로 내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여하튼지간에
요즘 내 취미는 '취미 만들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양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