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이야기
내 서랍 안에는 이것 저것 참말로 많은 것이 있는 편인데 오늘따라 괜스레 서랍 속 이것 저것을 뒤적거려 본다.
언제고 필요할 것이지만,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는 것.
(여름용 악세사리, 겨울 장갑들, 해양스포츠용 악세사리, 각종 디바이스 박스들, 보드게임류, 음악 CD들, 인감/통장 등의 뱅킹 관련)
딱히 쓸 데는 없지만, 버릴 수 없는 것.
(여행을 다니며 부지런히 모았던 뱃지, 시계, 소품들, 애플의 과거 기기들)
추억이 깃들여 있는 것.
(초중고대학교 앨범들, 사진들, 마라톤/수영 완주 메달 등)
혼자만 알고 싶은 것, 공유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가끔씩 꺼내보며 기억을 더듬는 것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써오던 일기, 편지, 습작들, 다이어트 인바디결과표(?))
잠시 둘 곳이 없어 임시로 넣어두는 것.
(불티나, 건전지, 담배 등등)
오만가지가 쌓여서 자리 잡고 있는 내 서랍 물건 중 어떤 것은 결국엔 서랍 속에서만 있다 버려질 수도 있고, 평생을 서랍 안에서만 감금당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건 내일 당장 바깥구경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 혼자만의 비밀, 그저 귀찮아하는 것들, 나의 히스토리와 추억. 서랍이란 공간은 어떻게 보면 은밀하면서도 나를 표현하기 가장 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미완성인 글, 또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글들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 서랍에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글들이 담겨져 있다. 권 여사님 에피소드, 더럽지만 웃긴 이야기, 취미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 그리고 실컷 써놓고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 서랍 속 물건처럼 이런 내 소소한 글들도 작가의 서랍에서 언젠가 밖으로 꺼내어 질 날이 있겠지. 그리고 그 글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되거나,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도 있겠지.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ㅎ) 그래서 좀 더 사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의 서랍.
오늘도 혼자 신이나 들썩거리며 이리저리 헤집어놨던 서랍을 늘 그랬듯 그렇게 다시 닫는다.
...
뜬금없지만,
과거 어릴 때 권 여사님이 가끔 불시에 서랍검사를 하는 바람에 내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듯한 서러움에 엉엉 울면서 등짝이 시뻘게질 정도로 맞은 때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