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는 아니지만, 나름 10km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를 뛴 적이 있었다.
초반에는 처음 마라톤을 나간다는 것에 신이 나서 오버페이스로 뛰다가 2km쯤부터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데드 포인트까지 정말 정신 못 차리게 헥헥거리며 달렸었다.
마라톤 시작 전에 이것 저것의 행사에서 얻어먹은 빵과 음료, 과자들이 배안에서 엉키면서 부대끼기 시작했고, 5km가 넘어설 때쯤엔 내 다리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뛰고 있었다. 7km쯤에서는 중간중간 공연하던 밴드들에게 혼자 욕을 퍼붓기도 했고(그땐 힘내라 GOGOGO 하던 그 밴드들이 왜 그렇게 미웠었는지..) 끝이 얼마 안남은 9km쯤에선 막판 스퍼트를 하기는 커녕 너덜너덜해진 내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골인지점까지 걷다 뛰다 했었다.
10km 골인 지점이 보일쯤에야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고, 입은 바싹 마른데다 화이팅이라는 목소리도 안 나오는 상황인데도 끝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달리기 시작했다. 뱃속에 부대끼던 과자들도, 너덜거리던 다리도 그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골인을 하고 나서 운동화에 묶어뒀던 센서를 반납하고 나서야 온몸의 힘이 풀리기 시작했고, 땀범벅인 옷 그대로 바닥에 누워 나눠준 바나나와 음료를 마셨다.
'끝났다'라는 허무함과 '해냈다'라는 성취감이 묘하게 동시에 느껴졌고, 엔딩 공연을 들으며 그땐 다 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었다.
처음 시작할 때 괜한 오버페이스로 신이 났지만 금세 힘들었고, 힘듦+힘듦+힘듦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체력적인 고갈 또한 오기 시작했다. 지겨우리만큼 길어진 시간에 지치기도 했고, 독한 언사에 좌절하던 때도 있었다.
데드 포인트 쯔음해서는 괜히 역정을 내거나, 혼자 쌍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울증 모드로 혼자 우울함이 바닥을 치다가, 또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화이팅 하기도 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떨어진 체력을 일으켜 세우며, 나름의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작했었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달래긴 했지만, 이미 가득 찬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치는 건 다반사였다. 그렇게 점점 골인 지점으로 보이는 곳에 다달았고,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들고 있다.
지금은 10km짜리 마라톤이 끝난 것 같다. 끝이 없는 마라톤을 하는 듯 했었다.
하지만 나는 10km가 아닌 결국 42.195km를 달리는 중이라는 걸 실감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달리기의 시작이다.
일단 잠시 멈춰 서서 잠시 숨 좀 고르고,
초코파이 하나 먹고, 이온음료 한 잔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뛰기로 하자.
어쨌거나 긴 마라톤도 결국엔 끝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