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밤
낮엔 해가 비춰서 꽤나 덥더니 밤이 되니 다시 쌀쌀해졌다. 담배피러 나간 베란다엔 차가운 기운이 물씬난다. 서둘러 불을 끈다.
윗집 모녀는 오늘도 이 밤에 싸우기 시작했다. 방학때는 그렇게 조용하더니 학기 중엔 이렇게 일요일 밤만 되면 투닥거린다. 아마도 월요병 때문인지 내일 학교 가야하는 사춘기 소녀는 오늘도 엄마와 방문을 사이에 두고 무한대립중이다.
월요병하니까 개그콘서트가 떠오른다. 늘상 티비를 끼고 살던 때는 토요일 오후엔 무한도전, 일요일은 저녁 예능부터 8시뉴스, 개그콘서트, 다큐3일을 주루룩 보는 편이었다. 개콘이 끝나고 개콘 개그맨들이 모두 나와서 인사하는 때의 그 특유의 bgm이 나올 때면 '아 이번 주말도 다 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큐3일의 나직한 성우 목소리를 들으며 차근히 새로 시작될 한 주를 계획하곤 했었다.
그러고보니 다큐3일 작가이던 일산 빈틈언니는 잘 지내고 있는걸까? 가끔 다큐3일 보다보면 그 언니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서 반가워 하곤 했는데..
티비를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개콘도 다큐3일도 그리고 일요일이 끝남에 대한 탄식도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월요병은 아마도 일요일 저녁의 티비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개콘의 영향도 클테지.
이번 주말엔 미뤄뒀던 대청소를 했다. 빨래를 옷 색깔에 맞춰 나눠 세 번이나 돌리고, 온 집안에 쌓여있던 먼지를 청소기 한번, 3M 청소 밀대로 한번, 그리고 일회용 물걸레로 또 한번. 청소용 물티슈로 창문 샤시 사이 틀까지 다 닦아냈다. 이미 그때쯤엔 체력의 50%정도를 쓴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욕실청소를 시작했다. 제주 최대의 단점이라면 아마도 습기인 것 같다. 욕실은 아무리 닦고 말리고 청소해도 금방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밖으로 나 있는 창문도 그닥 소용이 없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매직블럭으로 타일 사이 하나하나를 다 닦아낸다. 스쿼트 50번보다 더 힘든 것 같다. 가열찬 곰팡이 제거를 하고 나니 팔뚝에 알이 배겼다. 체력 100% 소진. 청소만한 운동이 없다.
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 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린다. 잘 밤에 무슨 커피냐고 잔소리 하던 엄마목소리가 괜히 생각이 난다. 남들과 다르게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온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컵을 무릎에 얹어놓고 마시다 졸아서 온통 커피를 쏟은 적도 있다. 아니 자주 있었다. 희안한 점은 아침에 일어나선 커피를 꼭 마셔야 잠이 깬다는 점이다. 밤에 마시면 잠이 잘 오고, 아침에 마시면 잠이 잘 깨고.. 결론적으로는 카페인이 잘 안 받는 체질이라는 거겠지. 그저 기분 탓인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