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by 유진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서른 이후의 나’는 꽤 거창했다.

모든 문제에 명쾌한 정답지를 든 채 세상을 여유롭게 관망하고, 흔들림 없는 경제력과 인격으로 무장한 거장 같은 모습.


하지만 막상 그 나이의 선을 넘고 보니, 현실의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매일 아침 오답 노트를 고쳐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얻어지는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치열한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몸만 커버린 아이’를 심심찮게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자신의 잘못을 “어려서”, “몰라서”, 혹은 “술에 취해서”라는 말 뒤에 숨기는 사람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

지금은 서글픈 당혹감이 먼저 든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타격을 주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혹은 인지하면서도 모른 척하는 무책임함.

나는 그것을 미성숙의 가장 명확한 증거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진짜 어른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실수 앞에 멈춰 설 줄 알고, 얼굴을 붉힐 줄 알며, 그 부끄러움을 다음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다.

같은 길로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안의 경계선을 고쳐 긋는 사람.


나에게 어른이란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굴리는 시스템을 가진 사람’이다.

감정은 날씨처럼 통제할 수 없지만, 태도는 실내 온도 조절기처럼 내가 설정할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화면 앞에서도 내가 정한 최소한의 루틴을 지키는 것.

그 사소한 시스템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든다.


또한 어른은 자신의 취약함을 숨기기 위해 ‘괜찮은 척’ 가면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의 결핍과 불안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것이 타인에게 독이 되어 흐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지키는 시스템이 견고해야 비로소 타인에게도 건강한 다정함을 베풀 근육이 생긴다.


이제 나는 누군가 정의해둔 어른의 형상을 쫓지 않기로 했다. 몇 평짜리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같은 외부의 지표는 더 이상 내 어른됨의 기준이 아니다.

대신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내 선택에 책임을 졌는가?

나는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보다 선명하게 만드는 관계 속에 머물렀는가?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가?


숫자로 된 나이는 매년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성숙이라는 훈장은 스스로 증명해낸 사람만이 가슴에 달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결과 없는 과정 속에서 나만의 태도를 쌓아 올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며,

이 시대를 통과하며 내가 배우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어른’의 자격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나로 만드는 이 시간을 통과한다.

비록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어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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