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거의 다 왔어 엄마 거기 맥도날드 앞에있어..응응 그리로 갈게'
서둘러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갔다. 나는 바쁜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치며 북적이는 대합실을 지나간다. 노란 맥도날드 로고 아래, 그날따라 샛노랗게 펑퍼짐한 리넨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참으로 정직하게 서 있다. 그런 엄마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은 괜한 기분 탓이었을까. 엄마는 그렇게도 북적이는 매장 앞에서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다. 놀이공원 입구 솜사탕을 든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던 엄마는 나를 발견하고 손짓을 한다. 불안해 보이던 엄마의 표정이 안심하는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는 더 빠른 걸음으로 엄마에게 갔다.
‘어디 앉아서 좀 있지 왜’
‘앉을 데도 없어. 괜찮아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
다음 주부터 바로 대전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던 터라, 주말을 이용해 지낼 집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엄마는 다 큰 아들 타향살이가 그리도 걱정이 되었는지, 굳이 내려가서 같이 집을 봐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우겨왔다. 나는 그런 엄마가 괜히 다른 회사 사람들 눈에 띌까 봐, 혹은 부동산 주인이 철없는 마마보이로 얕잡아 보는 건 건 아닐까 하면서 계속 말려왔던 터였다. 그러나 엄마는 완강했고, 나도 그래 그냥, 엄마 대전 구경이나 시켜주고 데이트나 하자 하는 마음으로 결국 두장의 기차표를 잡았었다.
‘엄마,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커피라도 하나 들고 가자’
‘엄만 됐어. 근데 이십 분밖에 안 남았는데?’
‘이십 분이나 남았는데 뭘. 괜찮아 금방 사’
나는 앞장서 엄마가 지키던 그 노란 맥도날드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 오른쪽에 줄지어 마주하는 키오스크를 보고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나야 아침 출퇴근 길 매번 익숙하게 공략하던 키오스크지만, 오늘은 무언가 더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내 뒤의 약자를 저놈들도 발견한 건가. 엄마에게 키오스크 다루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언젠가 엄마가 아빠 손을 잡고 여기 왔을 때, 내가 없을 때 어디 자기 먹고 싶은 커피 한잔 먹기 어려워 포기할 것 같은 슬픈 그림이 순간적으로 그려졌나보다. 상상조차 하기 싫다. 시대가 이렇다면, 사는 방법이 이리 변한다는 게 어쩔 수 없다면, 그 시류에 우리 부모님이 서글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저놈들이 엄마를 공격하게 두어선 안된다.
‘엄마 엄마가 이거 해봐. 엄마도 이제 이거 배워놔야 해’
‘이게 뭔데. 시간 없어 대충 네가 빨리해’
‘아냐 시간 있어. 요즘에 이런 거 모르면 어디 가서 음료수 한잔 못 먹어. 얼른 나 있을 때 엄마가 한번 해봐.’
엄마는 마지못해 가방에서 주섬주섬 동그란 안경을 꺼내어 낀다. 그리곤 오른손 검지를 결연하게도 준비했음에도, 첫 터치부터 망설이는 모습이다.
‘처음엔 그냥 아무 데나 누르면 돼.’
‘알았어. 가만있어봐’
내 말에 엄마는 어딘가를 조심히 누른다. 화면이 화려하게 뒤집어지고, 놀란 엄마는 입을 벌리고 누르면 뭐라도 망가질까 걱정하는 느린 그 모습이 안쓰럽다.
‘커피 음료 누르고, 응응 거기. 뭐 먹고 싶은지 누르고 그렇지 담기 눌러. 기다리면 결제하기 뜨지? 그림대로 카드 요 밑에 넣으면 돼. 아니 아니 여기다 넣어야지. 이렇게 하면 돼. 자 우리 번호 864번이래. 저기 화면에 번호 보이지? 저거 완료로 뜨면 집어가면 돼.’
‘휴. 우리 늦은 거 아니야?’
‘아냐 괜찮아. 아직 십 분이나 남았는데 뭘’
엄마는 초조해하면서도 내가 있으니, 내가 그리 말하니 조금은 안심을 한다. 엄마는 864라는 숫자가 써진 하얀 영수증과 화면을 번갈아 보고 또 본다. 십 분간 이루어진 이 속성 과외가 과연 효과가 있긴할까. 나는 물끄러미 엄마를 보다가 말을 걸었다.
‘엄마 만약에 기계 같은 거 다루고 뭐 하는데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해. 특히 밖에 있을 때. 나 바쁠 거라고 괜히 전화 안 하지 말고 바로바로. 나 별로 안 바쁘니까 항상.’
‘엄마도 다 알아 뭘.’
‘아무튼. 요즘에 핸드폰이니 뭐니 복잡한 거 하도 많으니까 헤맬까 봐 그렇지’
그새 864번이 화면에서 흰색으로 바뀌었고, 점원은 말도 없이 두 잔의 커피를 밀어낸다. 나는 다가가 그걸 집어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 엄마는 졸졸 나를 따라 나온다.
세상이 빨리도 바뀐다. 특히나 주변의 것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는 느낌이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기술들이 하루에 하나씩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너도 나도 직관적이고 쉽다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스스로를 가정하며 당당하게 우리에게 사용을 강요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적당한 기준안의 주요집단에게 분명히 효율적인 기술일 테다. 그것에 대해 반박할 여지도, 집단 밖 기계 앞의 약자를 대변할 용기도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이랬던 세상인 것 마냥 익숙한 풍경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네 부모님들이 스마트폰을 어느 정도 익숙하게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만 서글픈 것은, 그 기술 안에 사람의 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커피를 사는 것조차 기계의 말을 쫒아야 하는 것, 또 지금 기차를 찾아가는 길에도 사람의 말은 없다. 이렇게 살아가는 길에 사람의 말이 드물어진다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을 더 무섭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프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저기 키오스크가 벽처럼 우리를 먼저 막아서고, 그 뒤에 사람이 서있으며,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 벽들과 마주해야 할 모습이 결코 반갑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