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는 중고신입도 힘든가요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은 ‘이직’이다. 입사 6개월 차 때, n년 안에 이직하리라 다짐했다. 입사 초기에는 여느 회사원처럼 이 회사에 무조건 뼈묻하며 적어도 3년은 다닐 거라 다짐했다. 그런데, 너무도 빨리 나와의 약속을 깨야할 것 같다. 아니다. 사실은 아직도 고민 중이다. 마음은 손절하고 싶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나만의 사정이 있다. 왜냐면 나는 ‘생각보다 짧은 경력을 가진 기혼여성’이니까.
빠른 손절이 답일 수도 있잖아
먼저, 내가 이직을 생각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업무의 성격, 회사의 비전, 연봉 등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원 당시 생각했던 업무와 결이 다른 업무를 맡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기반 컨설팅이 주 업무인 줄 알고 지원했지만, 실제 들어와 보니 그런 업무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내 고민을 주변에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원래 회사라는 게 내가 원했던 업무를 하기 힘들어. 일이 힘들지 않으면 몇 년 존버하다 이직해”였다. 나도 안다. 그리고, 지원 당시 지원한 부서와 직군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지 않은 내 탓도 있으니까.
(한 줄 생각: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업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JD를 찾기가 힘들다. 해당 부서의 내부자를 알고 있지 않는 이상 회사 내부 상황을 파악하긴 매우 힘들다. 지원자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입사 후 중도 이탈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채용공고에 상세한 JD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서로를 위해서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90년대생은 끈기가 부족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짧은 기간 근무하고 이직을 결심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끈기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쉽게 손절하지 못하겠다. 한 번의 이직으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loyalty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면 억울하자나. 그래서, 또 다짐한다. “그래, 2년만 버티자. 12개월 보단 18개월이, 18개월 보단 2년을 채우는 게 나을 수 있어.” 그럼에도, 한 번씩 묻곤 한다 “근데, 빠른 손절이 답일 수도 있지 않아?”
이직이 두려운 이유 : 기혼과 적지 않은 나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학생일 때 결혼한 내 자신을 원망했다. 조금만 더 기다릴걸, 뭐가 그리 급해 모두의 조언을 뿌리치고 결혼을 했을까. 늦은 나이도 아니었다. 그땐, 결혼 후 안정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물론, 내 미래를 전폭 응원해주는 남자 친구가 듬직하기도 했다 (맞벌이가 가능한 여자를 원하는 요즘 세상에,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과 결혼을 결심했을까. 직장인이 되어보니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 당시에, 난 취업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기혼자”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편견에 대해 1도 고민하지 않았었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면접을 볼 때, 대놓고 결혼과 아이 계획에 대해 물어보는 회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혼자는 선호하지 않는다며 직설적으로 말하는 분도 있었다. 한 번은 여성 면접관에게 “나는 기혼인 여자인데도 기혼자는 선호하지 않아요.”라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그래? 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꽤’ 있더라.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그 다음엔, 내 이력보다 내 status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런 면접을 보고 나올 때면 후회가 밀려왔다. “아...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좀 더 멀리 내다볼걸...” 그리고, 기혼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에 화가났다. 오랜 실망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혼한 내 자신이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아직도, 기혼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회적 풍토가 문제인 거지.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도, 내 마음은 아직도 불편하다. 모든 내 선택에는 고민의 브레이크가 걸린다. 특히, 이직에 대해선 더 그렇다. 왜냐면, 난 “경력이 짧은 기혼자니까.” 사회가 많이 변했고 기혼 여성의 커리어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더 오픈되었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며, 결혼여부는 채용시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라고들 한다. 정말 그럴거라 믿었던 취준생 은 당황스러운 면접 경험을 통해 취업시장을 얼마나 naive하게 바라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직도 결혼으로 인해 자의던, 타의던 경력단절을 경험한 기혼 여성의 비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 같다. 기혼여성의 구직단념자 비율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높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남일이 아니기에 미래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