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고 또 뒤집고, 그래 참자.
몇 달 전 모래시계를 구입했다. 1분짜리 한 개와 3분짜리 한 개를 샀다. 내 맘에 쏙 드는 모래시계를 사려고 다이소, 교보문고, 오피스디포 등 문구용품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을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로드샵 어딘가에서 살 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찾을 순 있었지만, 가격과 디자인이 내 맘에 쏙 들지 않았다. 결국 가격과 디자인 모두 적당한 가성비템을 온라인에서 찾았다.
배송 온 모래시계를 만지작 거리다 보니 문득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그땐 스마트폰 스톱워치나 타이머가 없어 양치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 때 시계 대신 모래시계를 사용하곤 했다. 초등학교 때, 시간의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모래시계를 처음 접했던 것 같고, 과학시간에 모래시계를 만들어보는 체험 실습도 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모래시계는 문구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던, 시간관리를 위해 쓰던 흔한 아이템이었다.
난 왜 모래시계를 다시 찾았을까
감정이 흔들릴 때 평온을 되찾기 위해 나는 모래시계를 구입했다. 모래가 흐르는 시간만큼은 감정이 요동치더라도, 모래의 끝이 보이는 순간에는 감정의 평행선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나는 화가 나도 평온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없는 편이다 (내가 느끼는 난 무딘 사람이다. 무채색 같은 사람이랄까.)
그런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타인의 무례함, 공기처럼 몸에 배어 있는 그/그녀의 무례함에 감정이 흔들렸던 경험이 종종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도 나는 똑같이 감정을 배설하지 말아야지. 속 넓은 사람처럼 나는 웃으면서 대하는 거야”라며 다짐 하곤 했다. 그리고, 1분 혹은 3분이라도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나는 모래시계를 구입했다.
1분과 3분 사이에 생기는 감정의 변화
우리말에 ‘별안간’, ‘삽시간’ 이란 표현이 있다. 눈 한번 스칠 사이 혹은 이슬 같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모든 일은 찰나의 순간에 생긴 다는 뜻. 혹은, 그 찰나의 순간만 견디면 피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도 그렇다. 그 순간만 견디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그 순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느낄 수 있으니까. 순간의 실수로 직장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이불킥할 소재를 만들면 억울하지 않은가.
1분과 3분,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많은걸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내가 경험해보니 그렇다. 처음 모래시계를 사용했을 때는 ‘이거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스톱워치와 타이머는 핸드폰 잠금화면을 풀고, 시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버튼을 누르는 등 다중의 액션을 취해야 해서 적절하지 않다 생각했고, 반면 모래시계는 사용법이 간단하고 흘러내리는 모래도 볼 수 있어 시각적으로도 지루하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내적 힘을 키워주고 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거나, 섭섭한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종종 느끼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모래시계를 뒤집고 차분히 감정을 정돈시킨다. 그리고, 한번 더 “상대방의 언어의 온도는 왜 높은지. 내가 상대방이었으면 어떤 감정이었을지”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요동치던 내 감정은 다시 평행선을 그리고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 같다.
1분과 3분,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마음을 재정비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감정에 반응하는 온도가 다르듯이, 누군가에게는 1분과 3분이 마음을 재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 수 있을 것 이다. 본인에게 적당한 재정비 시간을 찾아보고,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