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바닷속으로 을지로는 길게 뻗어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Q의 옆을 지나간다.
그가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곳은 오래된 순댓국집. 그만큼 오래된 사람들로 식당은 가득 차 있다. 오히려 Q는 한결 명랑해진다.
청천강에서 벌어진 격렬했던 전투는 끝났다. 이제 사람들의 뱃속은 관용으로 넘쳐난다.
Q는 바지를 고쳐 입고 다방 계단을 올라간다. 머리에 이른 눈을 맞은 노인들이 창가 테이블에 모여 있다. 노인들은 여전히 탄핵 이야기를 하고 있다
Q는 카운터에 있는 노란 카나리아에게 다방 커피를 주문한다. 카나리아는 신속하게 커피를 타서 가져온다. Q는 맛을 음미하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것과 믹스커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은행잎이 남산 밑으로 떨어지고 시큼한 당귤은 혀끝에서 떨어진다.
을지로는 섬광의 시간을 아가미로 품고 있다.
노가리 골목엔 노가리가 있고 골뱅이 골목엔 골뱅이가 있다. 하지만 거리에는 흉내 내는 모방인들만 있지, 참인간은 전무하다. 터벅터벅 Q가 골목을 걷는데 골뱅이집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띈다. 날카롭게 조각나 있는 낯익은 형상.
저 영혼이 어떻게 이 순간 이곳에. Q는 그의 그림자를 밟을까 하다 그냥 피해 간다.
1/8로 정교하게 잘린 배 한쪽이 과도 끝에 꽂혀있다.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 걸인이 선 채로 걸인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돈주머니로 사용하는 모자를 손에 들고 지독한 지린내를 풍기는 남자. 그의 모자 속에 Q는 만 원을 넣는다. 그러자 걸인의 눈동자에 그의 소싯적 꿈들이 비친다. 남자의 정수리에 붙어있던 파리가 휘파람을 불며 날아간다. 계속 이 자리에 계시나 봐요, 지난번에도 본 것 같아서, Q는 말한다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음에 만나면 인사라도 하자고 Q는 말한다
걸인은 군데군데 빠진 누런 이를 정성껏 핥는다. 그러더니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그러죠, 처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없으니까요. 애초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으니까요,라고 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