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Jang Nov 02. 2024

(콩트) 카나시미니 사요나라

일본 열도가 감동에 휩싸여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도쿄시 기타쿠에 사는 한 남자의 선행 때문이다. 뉴스의 주인공은 와세다 대학을 중퇴한 후, 3년째 요미우리 신문 정기 구독자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기타자와 히로아키 씨다. 그는 도쿄 긴자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여자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가 여자의 생명을 구했다. 다음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의 전말이다.


지난 토요일 밤, 기타자와는 긴자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사케와 막걸리를 혼합해(일명 사카린) 마시고 러키 스트라이크를 피우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2차로 장소를 가라오케로 옮긴 후, 코지 타마키의 “Kanashimini Sayonara"를 부르며 밤새 신나게 놀았다. 기타자와가 유니클로 매장 앞에 쓰러져 있던 여자를 발견한 시간은 일요일 새벽 3시경이었다. 처음에 그는 쓰러져 있는 여자를 못 본 체 지나치려 했었다. 하지만 쩝쩝 입을 다시며 고개를 돌린 여자가 우에노 주리를 쏙 빼닮은 것이 아닌가. 어떻게 저토록 똑같이 생길 수 있지. 갈증을 느낀 기타자와가 세븐일레븐으로 들어가 포카리 스웨트를 사 마신 뒤 잽싸게 도로 튀어나왔다. 그 사이 스키니진을 입은 몇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싼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굶주린 승냥이처럼 빛났다. 기타자와는 다른 남자가 그녀를 업고 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순간 어디서 그런 기지가 생겼던지, 그는 한국말로(기타자와는 요요기공원 근처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소리치며 달려갔다. “주리야, 닝기미 정신 차려!” 그의 기세에 다른 남자들이 쭈뼛거리며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기타자와는 그녀를 둘러업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연약해 보이던 그녀의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여. 자. 뭐. 야... 왜 이렇게 무거워? 냉장고를 등에 진 것 같잖아. 가뜩이나 허리도 안 좋은데. 젠장.. 다시 내려놓을 수도 없고. 어쨌든 참아야 한다. 기타자와는 이를 악물고 멀리 보이는 도쿄 시립병원의 초록빛 십자가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갔다. 하늘도 감동했던지 도쿄에 부슬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 그래.. 푸틴.. 아니, 푸시킨이 그랬지..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이 여자는 어차피..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차라리.. 차라리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릴수록 노래를 부르자. 그의 뇌리로 가라오케에서 불렀던 ‘카나시미니 사요나라’(슬픔이여 안녕)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가 비틀비틀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봐요. 당신의 슬픔을 내가 씻어 줄게요. 그대 곁에 언제까지나.”

비에 젖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기타자와의 뺨에 닿았다. 은은한 레몬향이 났다.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도쿄 시립병원에 마침내 다다랐다. 기타자와의 눈에선 빗물인지 땀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입가에는 물론 승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