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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Apr 07. 2021

늙더라도, 꼰대는 되지 말자고

웹툰 만화가 원작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는 중이다.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다르게,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정주행'하지 않고 월요일, 화요일 새 에피소드가 업로드되기를 기다려 기다려 소위 '본방사수'를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평생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정작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보지 못했던 노인이 발레를 배워 무대에 서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연습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이를 먹는다, 늙어간다, 살 날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관계없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야 내가 남은 시간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은퇴하기까지, 그리고 은퇴 후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 남았을까. 내 꿈은 어디까지일까. 드라마의 덕출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면 정말 행복해지는 것일까.


나는 웹툰을 아직 보진 못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덕출은 웹툰의 늘씬한 할아버지가 아닌 약간 둔해 보이는 70살 평범한 노인이다. 하기야 요즘 나이 70이면 어디 가서 노인 소리도 듣지 못한다지만 어색하게 들리는 그 70이라는 나이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희번뜩 느낀다. 불과 십 수년이 남았을 뿐이다. 더도 말고 마흔이 넘어 본 늦둥이 우리 막내가 태어난 후로부터 산 날만큼만 더 살면 다다르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우리 큰 녀석은 마흔 살이 된다니! 분명히 내게 남은 날들이 산 날 수보다 더 적을 것이다. 그나마 건강한 상태로 살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매일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저녁식사 후에 한 움큼씩 털어 넣는 약들도 어쩔 수 없는 내 나이를 대변해 준다. 혈압약, 중성지방약, 전립선약, 콜레스테롤약, 거기에 베이비 아스피린, 오메가3 두 알, 종합비타민 한 알에 별도로 비타민C 1000mg. 내가 매일 복용하는 약들 종류다. 약이 많아서 물 한 모금에 다 넘어가지 않고 혀 뒷부분에 한 두 알이 덜컥 걸릴 때가 많다. 그렇게 알약 8-9알을 삼키고 나면 속도 더부룩하다. 식후에 이렇게 약 먹는 행사가 불편하고 싫지만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즐겁게 먹으려고 '캔디타임'이라고 이름 지었다. 골프라도 치는 날엔 젊은 친구들 보내는 거리에 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클럽을 휘두르고 나면 그날 밤엔 캔디 두 알(진통제)이 추가된다. 깜빡 잊고 먹지 않으면 자면서 끙끙 앓는다고 와이프에게 핀잔을 듣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다음, 다음 웹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말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유혹에서 자유롭고 지혜로워질까? 주위를 돌아봐도, 나 자신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자는 논어에서 知者不惑(지자불혹) 仁者不憂(인자불우) 勇者不懼(용자불구)라 하여, 지혜로운 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과연 나이를 먹음으로 해서 인생이 그렇게 업그레이드 되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은 놀부 영감 혹처럼 커져만 가고, 먹고사는 걱정, 자식 걱정이 좀 덜어지나 했더니 건강 걱정, 노후 걱정, 쓸데없는 잡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며, 용기는 커녕 갈수록 비겁해지고 겁쟁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인생은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거꾸로 퇴화해 가는 것만 같다.


50세가 되면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깨닫고, 60이 되면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들을 객관적으로 듣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경지에 다다라야 옳건만, 어째 똥고집은 날이 갈수록 세지고, 남의 말은 죽어라 안 듣고, 가뜩이나 편협한 시야는 갈수록 더 좁아지기만 하는 것일까.


냄새나는 꼰대 소리 안 들으려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비싼 향수도 뿌리고, 젊은 친구들에게 일부러 존댓말도 쓰지만 불리하거나, 결정적일 때 나이를 무기로 들이미는 그 뻔뻔함과 구질구질함은 그 잘 다려진 와이셔츠 소매에 화장실 가서 뭘 묻혀 가지고 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나이가 먹으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다. 그것도 지갑을 열 능력이 될 때 하는 얘기다. "나 때는 말이야(요즘은 이걸 '라떼'라고 한다고)"로는 젊은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내 젊었을 때는 이랬는데 니들 젊은것들은 적어도 이만큼은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검증 안되는 허풍으로가 아니라, 지금 저 꼰대가 저 정도 하는 것을 보면 젊었을 때는 굉장했겠다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실력도 있어야 한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입이라도 다물어야 한다.


꼰대라는 말은 단순히 나이 먹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21세기의 꼰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대와 소통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고리타분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권위주의적이다. 자신의 경험만이 바이블이다. 그래서 꼰대는 사회적 기피대상 1호이다.




곱게 늙고 싶다. 변해 가는 시대와 가치관을 잘 이해하는 세련된 노땅이 되고 싶다. 등 뒤로 더 이상 접히지 않는 뻣뻣한 두 팔은 그만 쿨하게 받아들이고, 그 대신 남의 말 잘 듣는 귀를 가지고 싶다. 나약함과 무능력으로 대변되는 늙음이 아닌 지혜와 통찰력을 갖춘.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모험심은 계속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나 자신에게도 자리 하나쯤은 양보해 주는. 그런 의미에서 이 브런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는 나를 바로 잡아 주는 고마운 공간임에 틀림없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나와 띠동갑이다. 그 친구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저렇게 꼰대짓 하면 뒷담화 하지 말고 나에게 직접 말해 주기, 약속?"


파트너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대답한다.


"다행히 아직은 아니십니다!"


그의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작은 위안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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