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어른이 된 아들에게

그리고, 빚진 마음으로 사는 아빠

by 짐꾼의 목장


큰 녀석이 서른 살이 되었다. 살다 보면 믿기지 않는 일들을 종종 겪는다지만, 내 아이가 서른이라니 도무지 현실감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만 같은데, 세상물정 모를 것 같던 이 아이가 벌써 서른이라고.


나는 성장기에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나의 분신 같은 아이들에게 아빠의 사랑을 듬뿍 부어주며 키우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짐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무렵,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마음처럼 풀리지 않던 사업은 긴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빼앗아갔다. 내 영혼과 시간을 온통 사업에 저당 잡혔던 그 시절, 돌이켜보면 그때가 아마 아이들에게 아빠의 만져줌이 가장 절실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부족한 보살핌 속에서도 아이들은 고맙게도 저들끼리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함이라는 부채가 남아 있다. 특히 큰 아이는 어려운 사춘기를 홀로 건넜다. 학교와 교회에서 bully를 당하며 마음고생을 할 때도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서 견뎌냈다. 대학 진학을 결정할 때도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더니, 졸업하자마자 의젓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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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큰아이가 이번에 휴가를 내어 한국여행을 떠났다. 서른 살이 된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아기 때 이후 가보지 못한 고국으로 여행을 간 것이다.


"한국에 가면 이건 꼭 해야 한다", "여기는 가봐야 한다"며 참견하는 아빠에게 아이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어느새 아들은 아빠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진 모양이다. 그러다가도 출국 며칠 전, 전화 로밍부터 KTX 예매 방법까지 이것저것 물어오는데 그 모습이 전혀 귀찮지 않고 오히려 반갑기만 하다.


아들은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내가 자각하기 훨씬 전에 어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빠가 가진 미안함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어디에 내놓아도 듬직한 믿음을 주는 멋진 어른으로 말이다. 가장 예민했던 시기에 아빠의 관심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제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아빠에게 왜 운동을 안 하냐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은퇴를 앞둔 아빠의 노후를 걱정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아이가 어릴 적, 생일 카드에 이런 글을 써주었었다. 한글로 바꾸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오늘이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길 바란다. 네가 다 큰 후에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건 아마도 오늘의 행복한 기억이 네 안에서 살아나 너를 간지럽혔기 때문일 거야."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후회와 기억도 함께 먹고 산다고 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는 다르다. 좋은 기억은 사람을 선하고 행복하게 만들며, 과거에 대한 반성과 후회는 사람을 한 뼘 더 성장시킨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큰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이 그 자체로 커다란 축복임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받은 축복을 나누어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서른 살, 이제 어른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는 아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26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