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를 덥석 안았다.
그 날은 월요일 오후 6시쯤이었다.
나는 대전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참기름 왔어.”
이미 집 호수를 알려준 터라
그녀가 퇴근길에 바로 들른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
아내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에 대해 하나하나 들려주기 시작했다.
“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렸어.”
오후 5시 반쯤.
인터폰 화면을 켰지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누구세요?”
잠깐의 정적 뒤에
밝은 목소리로.
“참기름 배달 왔어요~~”
아내는 바로 내려가겠다고 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파트 주차장은 늘 그렇듯
차들 사이로 어둑한 공기가 깔려 있었고,
1, 2호 라인 사이.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참기름 병을 가슴에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짧은 잠바, 부스스한 머리,
어딘가 급하게 나온 듯한 차림.
딱히 꾸민 느낌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참기름 배달 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봤고,
첫 인사는 평범했다.
그리고
그 분이 겪은 지난 일주일 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가족 중에 상을 당했다는 이야기.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그리고 아직 젊은 나이였다는 이야기.
와이프는 순간 멈칫했다고 했다.
이 짧은 만남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꺼낸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시간을 아내에게 열어놓고 있었던 거다.
말은 빠르게 이어졌고,
장례를 다녀온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와이프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마음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챙겨주셔서 더 감사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 남편이 그 손글씨로 쓰신 광고지를 보고 너무 감동해서 주문한 거래요.”
그 말에
그 사람은 환하게 웃었으면 말을 이어갔다.
“실은 제가 컴퓨터를 잘 못 해서요.
그래서 지금 컴퓨터 학원에서 배우고 있어요.”
그 광고지에 적혀 있던 글씨들이 떠올랐다.
또박또박 쓰다가
점점 기울어 올라가던 문장들.
대화는 참기름으로 이어졌다.
들기름이 왜 추운 지역에서 잘 되는지,
참깨는 왜 따뜻한 곳에서 잘 되는지,
포천 이야기, 경상도 예천 이야기, 그리고 시댁 이야기.
한 문장을 던지면
그 사람은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자신의 삶을 열어주었다.
끊기지 않을 거 같은 이야기가 멈추고.
헤어질 순간.
아내가 돌아서려 하자
그 사람이 갑자기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너무 자연스럽게.
아내를 덥석 안았다.
“감사합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한 문장이 이어졌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열심히 노세요.”
그 말은
어떤 이야기보다 오래 남았다.
그녀가 막 다녀온 장례식,
어려서 부터 아주 친했던 사촌 오빠의 갑작스런 사고사였다.
이제 막 50대로 접어든 사촌오빠였다.
아내에게 건넨 그 말은
아마도 그 황망함에 머물어 있는
그녀의 사촌오빠의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잠깐의 침묵으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두 가지 생각에 머물렀다.
하나는,
요즘 아파트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다.
인사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 처음 본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고, 웃고, 안아주고,
마음을 내어놓는다.
다른 하나는,
'아마 많이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빠르게 꺼낸다는 건,
어쩌면
그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참기름 병의 뚜껑을 열었다.
고소함이
코끝에서 춤을 춘다.
“여보, 내일 저녁은 비빔밥이다!”
이전 글.
https://brunch.co.kr/@eugenekimpsah/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