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시작과 멈춤

그 멈춤의 순간이 더 또렷한 정체성과 더 단단한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by 포텐셜아이즈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멈춰야 할까요?


요즘은 정말 어디를 가도 커뮤니티가 넘쳐나는 시대인거 같아요. 오프라인 모임은 물론이고, 디스코드·슬랙·오픈채팅·밋업까지…취향을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고,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수많은 모임이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곤 합니다.


저에게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취향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 물론 그것도 커뮤니티의 한 모습이겠죠. 하지만 제가 느낀 커뮤니티는 조금 달랐어요.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같이 발견하고, 조금 더 멀리 가볼 수 있게 옆에서 불을 붙여주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혼자일 때는 흐릿하던 가능성이 함께 모이는 순간, 이상하게 또렷해질 때가 있거든요. 누군가의 질문이, 다른 누군가의 결심이 되고 그 결심이 또 다른 사람의 시작이 되는 장면. 그때 사람들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아, 나도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라는 감각을 확인합니다. 정체성과 성장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이죠.


그래서 종종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커뮤니티란, 도대체 뭘까요?

언제 시작해야 하고,

또 언제 멈춰야 할까요?





그 동안 여러 커뮤니티의 시작과 끝을 경험해보고 한 가지 공통점- ‘결핍’에 주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는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과의 연결에 목말라했고, 누군가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가능성을 일깨워 줄 자극을 갈망하고…


이 결핍들이 만나 서로를 채워주는 행동이 쌓이기 시작하면 커뮤니티는 강한 에너지를 갖습니다. 세스 고딘이 말했듯, 사람들은 규칙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는 약속으로 묶이게 되더라구요. 모인 사람들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죠. 피카소의 「남자의 머리」 연작을 보면 한 사람 안에 서로 다른 감정과 정체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커뮤니티는 이런 사람들의 결핍을 매꿔주는 퍼즐과 같습니다. 구성원은 하나의 얼굴(결핍)만 가진 존재가 아니거든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으로 형성된 이 정체성은 바로 그 결핍이 사라지는 순간, 커뮤니티의 결속력도 함께 약해지더라구요. 처음 우리를 묶어주던 이유 - 결핍을 서로 매꿔줌-이 사라질 때, 커뮤니티의 정체성도 함께 옅어집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커뮤니티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속한 커뮤니티는 어떤 에너지를 만들고 있나요?

그리고…

혹시 이제는 멈춰야 할 시점은 아닐까요?



image.png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Head of a Man / 남자의 머리]라는 연작 중 하나로, “한 인물 안의 여러 감정과 정체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



우리 같은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People like us do things like this)
-세스 고딘(Seth Godin



시작은 ‘결핍’에서,

그 끝은 또 다른 ‘결핍’으로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아주 사소한 결핍에서 시작되곤 하죠. 정보가 부족해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는 실험해볼 공간이 없어서요. 그래서 작은 모임 하나가 태어납니다.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 없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죠.


레고 팬들의 이야기가 딱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레고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쌓였고, 레고는 그 결핍에 반응해 LEGO Ideas를 열었습니다. 누군가의 이 결핍이 결과는 불과 15일 만에 1만 명의 지지를 얻고,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졌죠. 이 순간, 커뮤니티는 단순한 팬 모임을 넘어 사람들의 창의적 가능성을 증명하는 실험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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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olingo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단순히 언어만 배우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진도를 보고, 응원하고, 때로는 경쟁했죠. 그 결과, 전 세계 사용자 중 약 90%가 광고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 모이게 됩니다. 학습이라는 개인의 가능성이 커뮤니티라는 장치 안에서 눈에 띄게 증폭된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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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가는 신호


그런데요, 이렇게 잘 돌아가던 실험실도 언젠가는 멈춤의 순간을 맞습니다.


Ning은 한때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면 여기서 시작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플랫폼이었습니다. 코딩을 몰라도, 복잡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었죠. 그래서 학교 동아리, 지역 모임, 팬 커뮤니티, 심지어 막 태동하던 스타트업 커뮤니티까지 정말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Ning 위에서 자라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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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환의 순간이었습니다.

Ning이 “이제부터는 유료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많은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거나,

아직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 결과, 수많은 커뮤니티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떠났다”, “네트워크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죠.


하지만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Ning의 창업자였던 Gina Bianchini는 이 과정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모든 커뮤니티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커뮤니티가
‘대중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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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커뮤니티는 숫자가 커지기 전에, 이미 강한 정체성과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수지만 밀도가 높고, 서로를 잘 알고, “왜 이 공간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 말이에요. 이 통찰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 Mighty Networks입니다.



Mighty Networks는
“모두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질문했죠.


이 커뮤니티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사람들을 묶는 관심사·가치·정체성은 무엇인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가 가능한가?


여기서 ‘니치 기반 커뮤니티’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크지는 않지만, 분명한 이유로 모인 사람들. 소수지만 오래 가는 관계. 이 커뮤니티들은 광고 트래픽이나 규모 경쟁 대신, 멤버십·콘텐츠·코스·이벤트 같은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Ning의 실패는 사실 커뮤니티의 다음 진화 단계를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료에서 유료로의 전환 실패는 “사람들이 돈을 안 낸다”는 교훈이 아니라, “사람들은 의미 없는 커뮤니티에는 돈을 내지 않는다”는 훨씬 정교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이겁니다. 멈춤은 가능성의 소멸이 아니라, 전환이라는 사실. 커뮤니티가 잠시 멈추더라도 그 안에 쌓인 경험과 관계는 다음 시작을 위한 불씨로 남습니다. 가능성은 늘 리듬 속에서 확장되거든요.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커뮤니티가 잠시 무너졌다고 해서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멈춤의 순간이 더 또렷한 정체성과 더 단단한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능성에 반응하는 커뮤니티 빌더의 역할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은 모든 걸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뒤에서 한 발 물러나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에 가깝죠. 커뮤니티 전문가이자 수많은 글로벌 커뮤니티를 연구해온 데이비드 스핑스(David Spinks)는 이 역할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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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크 스타트업, 브랜드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커뮤니티까지 다양한 현장을 직접 관찰하고 운영하며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어요. 사람을 대신 움직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능성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 말하자면, 무대의 주연이 아니라 조명과 동선을 설계하는 연출가에 더 가깝습니다.


커뮤니티 빌더는 창조자가 아니라,
촉진자다.



그리고 이 생각은 마케팅과 브랜딩의 세계에서 오래 활동해온 세스고딘(Seth Godin)의 말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그는 커뮤니티와 브랜드를 관통하는 본질을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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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는
약속으로 묶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칙이나 운영 매뉴얼이 아닙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사람이 환영받는다”,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정체성의 감각이에요. 그래서 커뮤니티의 진짜 가치는 규칙에 있지 않고,그 정체성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정체성이 자리 잡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공지에 반응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자기 가능성을 이 공간 안에서 시험하고, 확장해보는 주체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부터 커뮤니티는 운영자가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가 됩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에 반응하는 커뮤니티이 구조에 대해 한 번쯤 이 질문들을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1. 결핍의 정의 – 어떤 부족함이 이 모임을 필요로 하는가?

2. 시작의 에너지 – 그 결핍을 채울 시작하는 불소시개는 있는가?

3. 자율 구조 – 운영자가 없어도, 규칙이 없어도 사람들의 정체성은 계속 발현되는가?

4. 멈춤의 설계 – 언제 멈추고, 어떻게 전환할지 준비되어 있는가?

5. 임팩트 증명 – 커뮤니티의 정체성의 감각이 커뮤니티 밖에서도 증명되고 있는가?




마무리하며


커뮤니티는 계단처럼 쭉쭉 올라가는 구조가 아닙니다. 시작과 멈춤이 반복되는 파동에 가깝죠. 그래서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이 공간을 거쳐 갔는가”입니다.


오늘 당신이 만들고 있는 커뮤니티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확장하는 무대일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곳.


그 곳에서의 리듬과 구조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능성을 복리처럼 키워가며, 지금 이 시대에 마주한 자신의 결핍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채워가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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