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제갈량 동남풍' 일으키기가 근거 있는 이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정사삼국지'에서 비롯된 소설이기 때문에 약 70%가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정량적 기준이라기보다, 정사 기반 소설로서 ‘대체로 사실에 근거하지만 장르적 확장 및 창작이 섞여 있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실제로 삼국지연의는 현 시대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도인으로 알려진 좌자(左慈)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을 먹지 않아도 별 탈이 없거나 하루에 양 천 마리를 줘도 다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갖은 기이한 도술(道術)을 선보이는 장면은 소설적인 허구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켰다는 장면도 허구로 보는 이가 많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이나 기후의 예측은 세밀한 자연관찰만 이루어져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켰다.'라는 삼국지연의 내용이 사실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도 제갈량을 평할 때 세밀한 자연관찰에서 비롯한 경험 지식,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책략으로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故 고우영 작가 역시 '만화 정사삼국지'를 통하여 '제갈량이 동남풍을 일으켰다'는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고 작가는 이 현상에 대해 중국 양자강은 적벽대전 당시 '겨울철에 하루/이틀 정도는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이 사실이라면, 제갈량은 훌륭한 자연과학자이자 훌륭한 '공연 기획자(Performer)'이기도 하다. 왜냐?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고 주유에게 '재단을 만들어 주면,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라고 언급, 굳이 하지도 않을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마자 바로 안전하게 몸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제갈량, 사회생활에서도 동남풍을 불게 해야 하는 이유
만약에 제갈량이 타임머신을 타고 2026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삼국시대에 본디 서생(書生)으로 살았던 제갈량이었기에 분명 명석한 머리로 공부도 잘 하면서, 주변 상황을 세심하게 잘 살피는 성공한 사회인이 되었을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동남풍을 비는' 퍼포먼스 못지 않은 기획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똑똑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제갈량의 동남풍 퍼포먼스와 같은 예측능력도 필요하다. 이는 '똑똑한 직장인'과는 다르다. 똑똑한 직장인은 직장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똑똑한 사회인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제갈량의 동남풍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천재지변(天災地變)과 관련하여 어려운 점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합무역상사 및 유통업은 정확한 시기에 상품이 정확하게 목적항(필자 입장에서는 주로 인천항이 된다)에 도착해야 원활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무역 및 유통업 실무를 동시에 영위하는 필자는 그래서 선박 상황, 날씨, 출항일자, 입항일자, 검역일자, 수입신고일자, 통관일자, 도착일자를 모두 체크하여 회사 업무에 이상 없게 해야 한다.
그런데 무역이라는 것은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항공편이 아니라 선박으로 컨테이너 물량이 수입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컨테이너를 적재한 선박이 정확한 시각에 출항을 해도 목적항에 100%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목적항에 제 시간에 도착해도 바다안개(해무, 海霧)로 인하여 선박 자체가 접안도 하지 못한 채 서해바다에 머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상당한 서해바다의 경우, 부두쪽 썰물로 인하여 선박이 바다 정 중앙에서 하루/이틀 머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약속한 물량이 제 시각에 도착하지 못하여 유통업체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자연현상과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발생한 이러한 지연 현상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약속한 기한 내에 상품을 납품해야 한다는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면 필자는 "동남풍을 일으킨 제갈량의 심정이 이러한 것인가!"라는 한탄을 펼칠 때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필자도 동남풍을 일으키는 제갈량이 될 수 있었다. 아예 출항 스케줄을 앞당겨 상품 재고를 미리 확보하거나, 상품 출시 일자를 한 주 늦춰 계약기간을 변경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 트렌드 상품일수록 시장 출시 일자라는 측면에서 바이어가 예민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해외 생산라인 점검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 계획과 선박 스케줄을 미리 받아 본 이후 상품 출시일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것만 이루어져도 충분히 현대 사회에서 '동남풍을 일으키는 제갈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2026년 4월, 해무(海霧)로 인하여 선박 접안이 늦어진 이후의 단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