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를 왜 하시나요?

전문 연주자이건 취미 연주자이건 아무튼 연주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건반을 연주하는 게 좋아서 피아노를 배웠고 배움이 멈추고 난 뒤-너무 이른 시기에 멈춘 것이 문제였다-그저 재미로 혼자 이것저것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피아노를 플레이했다. play라는 영어단어는 ‘연주하다’는 의미도, ‘놀다’는 의미도 있는데 나에게는 그 두 가지 의미 모두로서 피아노를 플레이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당 반주자로 간택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저 그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전까지 내 연주의 목적은 오로지 ‘플레이’였다. 나에게 건반은 그저 즐기는 대상이었고 잘하든 못하든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임무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연주를 하는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다.

성당에서 미사 반주라는 것은 내가 즐기기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칫 수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고, 경건한 미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었고 더 생각해 보면 사춘기 언저리였던 것도 같다. 그런 사춘기 소녀인 내게는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망신을 당해 시쳇말로 쪽을 팔리게 될 것이 가장 중대한 문제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직하게만 연주하다 보면 내 능력상 개망신을 면치 못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데 적당히 뺄 거 빼고 박자에 엇나가지 않게만 조심하면 이 중대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반주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흔히 하는 빈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교중미사 반주를 가끔씩 맡겼고 난 이 사람들이 찐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 사춘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뭔가 돌출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나에게 끔찍한 일이었다.-시키는 임무를 하루살이처럼 넘기고 또 넘겼다.

그때는 미사반주를 망치게면 비난을 당하면서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티 안 나게 은근슬쩍 ‘유야무야반주’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더 커졌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난 교중미사 반주자가 된 것이다.

대학을 가게 되면 성인이니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더 강력한 족쇄로 바꿔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음악 열정이 많다 못해 철철 흘러넘치는 주임신부님이 부임하셔서 이 시골 성당에 파이프오르간을 들여오셨다.

난 어쩔 수 없이 정식 오르간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차저차하여 지금의 평생 오르가니스트로 살게 되었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어떤 오르가니스트의 삶을 살아오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연주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지속적으로 바뀌었던 것을 말하고 싶다.

사춘기의 초보 반주자였던 나는 오로지 비난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연주했고, 갑작스러운 교중미사 반주를 맡게 되면서 각종 특별한 전례와 성가대 음악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연주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제대로 연주해야 하니까 정식 교육을 받으면서 내 그간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나가야 했다. 이때는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유야무야반주를 해왔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 져서 오르간을 전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십 년이 지나면서 내게도 나약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뻔한 안일함과 슬럼프가 찾아왔다. 매일매일 똑같은 성가곡을 반주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반주를 하기 싫어졌고 그냥 멋있는 오르간 작품만 연주하고 싶어졌다. 유학과 귀국의 브리지과정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성당반주를 3년 정도 그만뒀다.

그때는 정말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동안 단련된 내 귀는 성당에 미사 봉헌하러 갈 때마다 누군가 연주하는 잘못된 오르간 소리만 듣고 있는 것이었다. 도저히 미사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때는 미사 참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성가대 없는 교구성당이 아닌 곳으로 미사를 찾아다닐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내 귀의 수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오르간을 공부해 왔다는 내 교만함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신상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서 삶에서 오는 고난으로 넘어진 때가 있었다. 아무 영혼 없이 몇 년을 눈동자가 흐린 채로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던 그 어느 날, 성당에 갔는데 평일미사에 반주자가 없는 것을 보고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반주를 했다. 어느 미사 후에 노년의 단정한 자매님이 나에게 다가오셨다. 나무 묵주를 내 손에 쥐어주시면서 ‘고마워요, 계속 열심히 해주세요’ 하셨다.

그날을 기점으로 내 반주는 달라졌다. 나는 어떤 미사에서든 미사에 오시는 분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마음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연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눈물이 맺힐 정도록 따뜻한 마음이 들도록, 성가를 힘차고 신나게 부를 수 있도록, 성가의 가사가 내 기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연주를 매 순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는 성가의 가사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멜로디나 화성과 잘 맞아떨어질 때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에도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가를 치다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자주 생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 순간에 성령님이 나에게 오신 거라 하더라. 교만한 이성주의자였을 때의 내가 귓등으로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수없이 찾아왔다.

이렇게 반주를 하는 목적이 달라지고 보니 내 연주 또한 퀄리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랄까?

하늘에 계신 분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오직 한 가지 ‘사랑의 마음‘이 들어갔으니까 나에게도 남에게도 아름답게 들릴 수밖에… 무엇보다도 위에 계신 그분이 좋게 보시리라.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미사 반주가 되었건, 작품 연주가 되었건 똑같은 마음으로 오르간 의자에 앉는다. 내가 즐거우면 듣는 이도 즐겁고,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것은 진짜 음악이 되어서 하늘에 까지 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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