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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볼프강 체러 오르간 독주회

2018.3.17 토 17:00 롯데콘서트홀

올 한 해는 직업에 충실하고자 오르간 연주회에 될 수 있으면 많이 다녀볼 요량으로

일찌감치 롯데콘서트홀 2018 오르간 시리즈를 모두 선 예매하였다.  

그중 첫 순서로 위대하신 볼프강 체러님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독일 유학 시절 귀에 못이 앉도록 많이 들었던 체러님의 명성에 그의 음악회를 찾아다녔다.

내 기억으로는 두어 번 정도 기차를 타고 큰 성당에서 그의 연주를 들었는데

매번 겨울 저녁에 추위를 정면으로 맞아가며 독일 낯선 동네를 헤매다가

언몸을 이끌고 성당에 들어가

부드러운 천사의 목소리 같은 그의 아름다운 오르간 소리에 귀와 몸이 스르르 녹아

의식이 아득해지는 체험을  한 것이 내 기억의 전부다.


이제 더이상 연주회를 보기위해 멀고도 낯선 곳을 헤매다니다 연주회 중에 졸음에 빠질 걱정 없이, 훌륭한 악기로 농익은 대가의 연주를 제대로 듣고 난 나의 생생한 리뷰를 시작한다.  



악기

오스트리아   Rieger, 4 manual  68 stop

너무나 유명한 오스트리아 '리거'사의 4단 오르간이다.

빈의 <Musikverein Saal>에 당당히 설치되어 있는 악기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횃불회관 등에 설치된 훌륭한 악기이다. 워낙 대규모 악기여서 거의 모든 시대 작품을 연주하기 좋고 특히나 롯데콘서트홀의 자랑인 '어쿠스틱 배너' 덕분에 적당한 잔향을 누릴 수도 있다. 관객석도 빈야드 구조로 어느 좌석에 앉아도 음향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오르간 바로 옆 A석에 앉아서 들었다.

사실 몇 차례 롯데콘서트홀 연주회에 왔었는데 R석인 앞쪽 센터보다 오히려 사이드인 A석이 음향 밸런스가 좋아서 놀랐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연주자도 잘 보이고, 음향도 좋고 하여 오르간 연주회 좌석으로는 일석 삼조의 혜택이다.


프로그램

시대별, 나라별 프로그램이 너무나 골고루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독일 바로크, 바흐, 낭만 작품에 프랑스 현대음악으로 대표되는 메시앙까지...

이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기 좋은 프로그램으로  판단된다.

메시앙과 레거의 작품이 이 악기의 능력을 최적으로 끌어내는데 아주 좋은 레퍼토아였다고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바흐 푸가 BWV575의 신선함과 브람스의 코랄 10번 Herzlich tut mich verlangen의 진중함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또한 앙콜에서 바흐 코랄 kommst du nun, Jesu, vom Himmel.... BWV650과 브람스의 11개의 코랄중 Schuemuke dich, o liebe Seele를 연주하였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우연이기에는 너무나 신기하게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곡들이었고 심지어 브람스의 코랄은 요즘 한창 꽂혀서 매일 하루에 한 번씩은 치고 있는 곡이다.


연주

전에 들었던 연주회에서 내가 졸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연주였다.

아니 도대체 이런 연주를 듣고 졸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독일의 대표적인 연주자인 만큼 독일 작품에 아주 강세이기도 했고, 그 표현이 아주 진중했다.

북스테후데 토카타에서 강하고 섬세하게 몰아치다가 푸가로 들어섰을 때의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차분함 , 브리지에서 넘나드는 참신함과 두 번째 푸가와 더불어 종결부의 폭풍 같은 장중함. 어떤 부분 하나 놓칠 수 없었다.

또한 두곡의 바흐 작품에서는 각기 반대되는 성향을 너무나 아름다운 품격으로 연주하였다.

브람스의 시기적절한 사순 주제 코랄은 얼마나 진중했던가...

메시앙의 제목에 걸맞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음향적 개성으로 풀어나가며 현대작품의 난해성을 한 차원 높여주었다. 덕분에 듣는 사람들은 몹시 힘들어 보였지만....

마지막 레거의 파사칼리아와 푸가는 그의 모든 역량과 집중력이 절정을 이뤘다.

뭐 어떤 곡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영광스럽기까지  한 거장의 연주가 너무나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매 곡을 연주하기 직전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장의 겸손하고 순수한 모습에서 진정한 위대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끝없는 찬사, 또 찬사!!

연주회에 와서 엄청난 선물을 받고 벅찬 마음으로 한 참을 연주회장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너무나 주관적인 사족:

1. 프로그램북

지난번 엘림아트센터 연주회 때 슈 메딩 씨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롯데콘서트홀 연주회는 프로그램북 마저 경이로웠다. 프로그램 노트가 너무나 분석적이고 프로페셔널하게 쓰여있는 것을 보고 이런 프로그램북을 헐값에 사게 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전 <콰이어 앤 오르간> 편집장이었던 김효진 씨의 칼럼 같은 곡해설이었다. 그분께도 '그뤠잇' 드리고 싶다.

program note

2. 연주 후

연주가 끝났을 때가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라 아래 푸드몰에서 식사를 하며 감동 연주 후기를 밥알 튀기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눈에 띄는 한 키 큰 외국인. 배낭을 메고 등산 잠바를 입고 식당가를 활보하는 인상 좋은 체러 선생님.. 연주가 막 끝난 음악가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모습으로 해맑은 미소를 뿜뿜하며 그 순수한 모습이라니.... 그의 오늘 연주가 아니 매일의 그의 연주가 항상 진중하고 순수하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분주히 오르가니스트로서 집을 나설 때까지 그의 연주회의 여파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Wolfgang Z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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