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의 기록 그리고 병오년의 기록을 앞두고

기록을 가능하게 해 주신 분들께

by 기록하는노동자

2025년은 처음부터 달라질 것을 예감한 해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시간의 흐름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의 기준은 제게는 5월이었습니다.

을사년을 지나오며

1월에 행정법원은 우리가 당했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끝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부당노동행위 한 건도 추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판단은 결과를 넘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과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2월에는 이동사무실을 다시 시작하며 현장에서 동지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짧은 점심시간, 공장 앞의 잠깐의 만남 속에서 노동조합은 문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3월에는 대의원 선거를 치렀습니다.
조용했지만 치열했고 조직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4월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사건과 함께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형식은 협약이었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을사조약이라는 역사적 장면이 겹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기록이 시작된 5월

그리고 5월 저는 브런치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읽히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라지지 않게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그 사실은 2025년을 전혀 다른 해로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읽고 계신다는 인식은 기록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더 신중하게 쓰게 되었고 더 성실하게 남기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기록과 함께 흘러간 시간

6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노동조합 사무실이 마련되었습니다.
동시에 위원장의 부당해고를 인정한 행정법원 판결도 내려졌습니다.
그날은 비로소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7월에는 위원장과 감사 선거가 치러졌고

초대 위원장이었던 저는 재선이라는 선택을 다시 한번 받았습니다.

그것은 명예라기보다 책임의 연장이었습니다.


8월에는 제대로 된 임금교섭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같은 테이블에서 같은 언어로 숫자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9월에는 노동조합 창립 3주년을 맞이했고
위원장 복직을 위한 보다 강력한 대외 연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0월에는 위원장 복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1월에는 위원장 복직이 확정됨과 동시에 '출근 대신 기록합니다 乙의 일지'
텀블벅 출간 프로젝트가 여러 분들의 응원 속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2월에는 드디어 회사에 복직했고 정상적으로 위원장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오년의 기록은 어떻게 전개될지

병오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단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병오년의 기록은 을사년과 같은 방식으로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을사년의 기록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기록이었다면
병오년의 기록은 존재를 전제로 시작되는 기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급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정확하게 남기고

분노보다 맥락을 우선하는 기록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병오년의 기록은 혼자 쓰는 기록이 아닐 것입니다.

을사년의 기록을 읽어주시고 지켜봐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저는 병오년에도 계속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2025년은 저 혼자만의 해가 아니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이 있었고 그 시선이 있었기에 끝까지 기록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을사년의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여러분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다가올 병오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차분히, 성실하게 기록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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