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조합원, 무임승차하는 비조합원, 그리고 혼자 싸우는 노조
노동조합이 생기면 회사는 바뀔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노동조합이 있어도 회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를 회사의 태도에서만 찾는 건 절반의 진실이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 안의 태도에 있다.
조합원은 결과를 원하고 과정에는 서지 않으려 한다
이동사무실을 하던 날이었다.
한 조합원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위원장님, 저는 임금인상과 임금피크제 때문에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막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탈퇴하려고 합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도와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
다만 임금피크제는 당사자의 문제제기가 있어야
노동조합이 이후 행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앞에 나서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옆에 있던 이미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또 다른 조합원이 말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조합에 남아야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됐다.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오래 남았다.
씁쓸하게.
조합원은 결과를 원하지만
그 결과로 가는 과정에는 서지 않으려 한다.
그 순간 노동조합은
‘함께 싸우는 조직’이 아니라
‘대신 해결해 주는 조직’이 된다.
비조합원의 무임승차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비조합원의 태도는 또 다르다.
어쩌면 더 솔직하다.
“가만히 있어도 노조가 바꾸면 적용받잖아요. 그런데 뭐 하러 가입해요?”
명절이 다가오면 이런 말도 듣는다.
“왜 우리는 계열사처럼 상품권 선택이 안 되나요? 노조가 좀 힘써주세요.”
노동조합은 응원하지만 가입은 할 수 없다는 사람들.
혜택은 필요하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태도.
이런 무임승차가 반복되면 회사는 계산을 끝낸다.
“굳이 노조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라고.
과잉충성한다고 회사가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더 어려운 건 조합원이 아니거나 조합 가입 자격이 없는 일부 노동자들의 태도다.
그들은 회사를 곧 자신으로 동일시한다.
“회사가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린다”라고 믿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를 회사를 공격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과잉충성은 그렇게 시작된다.
노조를 향한 불필요한 적대, 갈등을 키우는 행동들.
문제가 생기면 회사는 문제의 원인인 과잉충성자들을 내쫓는다.
이미 충분한 교육을 했음에도 개인이 저지른 잘못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과잉충성하는 그들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회사는 당신들의 월급이 얼마인지 신경 쓸까?
20년 넘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고 있을까?
“재테크를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 뒤에서 노동자는 다시 침묵한다.
근무시간에 업무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재테크를 잘하라는 걸까?
비꼬는 건 아니지만 과잉충성하는 자들 중 일부 재테크에 성공한 자들이 있다.
그리고 항상 제발 저 양반 일하는 꼴을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뒤에 따라다닌다.
회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강경함이 아니다
회사는 강경한 조합원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다.
회사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조합원들이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그리고 비조합원이 점점 줄어드는 구조다.
그렇다고 과반노조가 되어 실력행사로 회사를 압박하는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미 한 번 경험했고 그 끝이 얼마나 소모적인지도 잘 알고 있다.
변화를 만드는 힘은 강경함이 아니라 밀도다.
말의 수가 아니라 같이 서 있는 사람의 수다.
결국 회사가 안 바뀌는 이유
노동조합만으로는 회사를 바꿀 수 없다.
조합원만으로도
위원장 혼자서도 안 된다.
조합원이 결과만 요구할 때, 비조합원이 책임 없이 기대할 때,
그리고 침묵이 안전하다고 학습된 조직에서는
회사는 굳이 바뀔 이유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는 그대로이고 노동조합만 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묻는다
그래도 나는 묻고 싶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우리 회사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노동조합은 누군가 대신 싸워주는 조직이 아니다.
함께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조직이다.
회사가 바뀌지 않는 이유를 회사 탓으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침묵이 안전한 조직에서 말하는 것이 다시 안전해지도록.
그게 노동조합이 해야 할 가장 불편하고도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