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물량, 입춘 그리고 격려금 논란

2026년 02월 02일 ~ 02월 08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2월의 시작은 예상보다 분주했다.
은행 창구에서 서류 더미와 씨름하고 현장에서 첫 물량을 내보내고
회식 자리에서 후배들의 웃음을 지켜보는 사이
격려금이라는 단어 하나가 한 주를 흔들어 놓았다.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미리 말해주지 않는 일들”이 터질 때다.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늘 사후에 뛰어다닌다.
그래도 이번 주 역시 뛰는 수밖에 없었다.

2월 2일, 통장 하나 열려면 서류는 수십 장

오전 공장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는 근로시간면제를 사용했다.
노동조합 신규 계좌 개설을 위해 규약, 고유번호증, 설립신고증, 조합도장을 챙겨 은행으로 향했다.


요즘 통장 개설 자체도 쉽지 않다.
게다가 고유번호증을 가진 비영리 노동조합 명의 계좌는 더 복잡하다.
처음 개설했던 지점은 해당 업무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며 더 큰 지점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2시에 시작한 업무는 은행 문이 닫힌 4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창구에 앉아 서류를 쓰다 보니 체력이 빠져나간다.


노동조합 명의 하이패스 카드까지 신청하니 서류가 끝이 없다.
우리는 사업자등록증이 아니라 고유번호증이다.
금융권에서의 제약은 생각보다 많다.
온라인으로 되는 건 거의 없다.


노사관계만 기울어진 게 아니다.
금융·행정 절차도 결코 평평하지 않다.

2월 3일, 내 이름으로 나간 첫 물량

오늘 내 이름으로 나가는 첫 레미콘 물량이 출하됐다.
가설 물량, 소량이었지만 내 현장의 내 물량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이었다면 그저 “시작하는 현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작은 물량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영업사원으로서의 정체성도 다시 챙겨야 할 때다.
건설경기는 침체됐고 경쟁은 치열하다.
위원장으로서의 역할과 영업사원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놓치지 않아야 한다.


두 정체성을 다 지키는 일.
그게 요즘 나의 숙제다.

2월 4일, 뜨거운 회식, 차가운 체력, 입춘이었다

영업팀 회식이 있었다.
나를 포함에 팀에 세 명이나 들어왔고 팀장 포함 일곱 명이 모두 모였다.
공장장도 함께했다.


예전처럼 경직된 자리는 아니었다.
우리 회사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땐 논다”는 문화가 있었다.
많이 희석됐지만 아직 남아 있다.


후배들 표정을 살피게 된다.
혹시 불편한 사람은 없는지.
내일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후배들은 깔깔 웃고 나는 그 웃음 속에서 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몸도 마음도 따뜻한 날이었다.
입춘이었다.

2월 5일, 이동사무실과 격려금 폭탄

강서공장 이동사무실 날이다.
부위원장과 부서를 돌며 간식과 음료를 나눴다.
설비 개선 중이라 공정팀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힘든 점을 묻고 분위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소식.
같은 업종의 계열사가 설을 앞두고 격려금 200만 원 지급을 확정했다는 이야기였다.


HR팀에 확인했다.
우리 회사는 현재 지급 계획이 없다고 한다.


같은 그룹, 같은 업종.
한쪽은 지급 확정, 한쪽은 계획 없음.


노동조합 입장에서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런 사안이 사전 공유 없이 ‘통보’로만 흘러오는 구조가 더 답답했다.


이동사무실 중에도
계열사 위원장, 우리 간부들, 회사 담당자와 전화가 이어졌다.
그 사이 고객 응대, 조합원 문의까지.


왜 우리는 늘 사후에 뛰어야 할까?
결론은 “다음 주 월요일 확인”이었다.
지급되지 않으면 강력히 항의하겠다고 분명히 전했다.


저녁엔 기자들과 약속이 있었다.
을지로까지 넘어갔다가 돌아오는 길,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

2월 6일, 연차는 냈지만, 마음은 출근 중

복직 후 처음으로 나를 위해 연차를 냈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제 격려금 이슈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와이프 안경 찾으러 여의도에 다녀온 것 말고는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고민했다.


연차를 내도 위원장은 완전히 쉴 수가 없다.

2월 7일, 가족과 있을 때는 잠시 내려놓기

상도동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봄에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했다.


잠시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저 따뜻했다.

2월 8일, 오지 않은 월요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내일이 두려웠다.
격려금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미리 걱정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머리를 비우고 다음 주 일정을 정리했다.

결국 우리는 걱정보다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 주는 통장을 열고 물량을 시작하고 격려금을 두고 다투며
또 한 번 균형을 고민한 시간이었다.

노동조합은 준비 없이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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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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